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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나는 의아한 얼굴로 배현민을 바라보았고, 배현민은 이내 검사 결과 보고서를 내밀었다. 배현민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매우 기대하는 눈치였다. “어젯밤에 갑자기 쓰러져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의사 선생님이 검진해 봐야 한다면서 자기를 데려갔는데 글쎄 검사해 보니까 임신이라잖아. 그런데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감정 변화가 심해서 좀 위험했대. 당분간은 병원에서 지내며 몸조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는 그가 건넨 보고서 속 아직 완전한 형태조차 갖추지 못한 아이의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내 마음은 진작에 상처투성이가 돼버렸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작은 생명 덕분에 약간의 위안을 느꼈다. 나는 자기도 모르게 조용히 내게 찾아온 이 작은 생명을 어루만지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신 나는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다. 나는 내 아이만큼은 나와 같은 동년을 보내지 않기를 바랐고 그래서 입을 열었다. “현민 씨.” 배현민은 내가 갑자기 부르자 의아해했다. “응. 왜?” 나는 고개를 들며 어떠한 결심을 내렸다. “예전 일들은 더 이상 따지지 않을게. 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말이야. 우리는 앞으로도 예전처럼 지내면 돼. 알겠지?” 배현민은 내 눈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여보.” 곧이어 배현민은 붉은색의 케이스를 꺼내며 조금 긴장한 얼굴로 그것을 열었다. 그 안에는 백합 모양의 귀걸이가 들어 있었다. 결혼하고 난 뒤로 배현민이 내게 선물을 준 적은 거의 없었기에 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이게 뭐야?” 배현민은 조금 긴장한 어투로 말했다. “이건 자기한테 주는 선물이야.” 나는 그것을 건네받았다. “고마워.” 그동안 어떤 일을 겪었었는지를 막론하고 내게 찾아와준 이 작은 생명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기쁨을 느꼈다. 잠시 후, 배현민은 전화를 받더니 회사에 볼일이 있다며 내게 짧게 입을 맞춘 뒤 떠났다. 나는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배를 어루만져 보았다. 내 표정도 점점 더 부드러워졌다. 삑. 휴대전화 알림이 울렸고 나는 무심코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배지욱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배지욱은 내게 홍시연의 SNS 게시물을 캡처해서 보내주었고 나는 그것을 클릭해 보았다. [다이아몬드 선물 고마워요.] [그런데 이 브랜드 정말 센스 없네요. 사은품으로 이렇게 못생긴 백합 모양 귀걸이를 주다니 말이죠. 귀걸이는 너무 눈에 거슬려서 그 사람한테 대신 버려달라고 했어요.] 홍시연은 자신의 셀카와 함께 글을 올렸다. 홍시연은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받쳐 들고 있었는데 그 손의 약지에 큼지막한 다이아몬드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 다이아몬드에 내 시선이 고정되었다. 비싼 다이아몬드라서 그런지 아주 정교하고 아름다웠고, 사진을 통해서도 다이아몬드가 반짝반짝 빛나는 게 보였다. 휴대전화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배현민이 입을 맞췄던 입가가 불에 덴 듯 화끈거리면서 속이 울렁거렸다. 내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이, 내 남편은 나를 걱정하기는커녕 거액을 들여 홍시연을 위해 비싼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주었다. 그러고는 내가 깨어난 뒤에는 홍시연이 눈에 거슬리니까 버리라고 한 사은품을 내게 선물로 주면서 내 환심을 사려고 했다. 배현민에게 나는 그만큼 하찮은 존재였다. 내게 잘 보이려면 좋은 선물을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남이 버리는 것을 가져다 주기만 해도 나는 감동을 받고 그가 한 짓들을 모두 용서해 주었다. 절망이 물밀듯이 밀려와 나를 익사시키려고 했다. 왜? 왜 다들 나를 이렇게까지 짓밟고 상처 주는 걸까? 배현민은 무엇 때문에 또 싸구려 감언이설로 나를 붙잡아두려는 걸까?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세상이 빙빙 도는 것만 같았다. 삑. 휴대전화 벨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나는 간신히 절망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엄마, 보고 싶어. 나 보러 와주면 안 돼?” 배지욱이 축 처진 목소리로 말했다. 배지욱은 어제 이미 자신을 상처 입히는 일을 했다. 나는 배지욱이 혹시라도 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바보 같은 일을 할까 봐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바로 갈게. 어디 있어?” “병실에서 나와.” 배지욱의 앳된 목소리에서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왼쪽으로 꺾은 뒤에 쭉 걸으면 돼.” 나는 배지욱이 말한 대로 밖으로 쭉 걸었고 이내 계단 위에 서 있는 배지욱을 발견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배지욱의 창백한 얼굴 위로 쏟아졌다. 이 순간 배지욱은 매우 연약해 보였다. 혈연이라는 건 참으로 이상한 것이었다. 배지욱이 몇 번이고 내게 상처를 줬음에도 나는 배지욱이 연약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마음 아파했다. 나는 배지욱의 앞에 쭈그려 앉아 물었다. “왜 그래?” 배지욱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시연 이모가 그랬어. 엄마가 임신했다고. 그래서 아빠는 엄마를 좋아하지 않아도 아이 때문에 계속 엄마랑 살 거라고 했어. 그게 정말이야?” 나는 화들짝 놀랐다. 홍시연은 어떠한 의도로 배지욱에게 그런 얘기를 한 걸까? 나는 배지욱에게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망설였다. 그런데 이때 배지욱이 입을 열었다. “시연 이모가 그랬어. 내가 예전에 했던 짓들 때문에 엄마가 나를 싫어할 거라고. 그래서 동생이 생기면 동생만 챙겨주고 나는 더 이상 사랑해 주지 않을 거랬어.”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혼자서 그런 생각들을 한 걸까? 나는 순간 마음이 약해졌다. 배지욱은 어린아이여서 문제가 생겼을 때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법을 몰랐다. 나는 배지욱의 어깨 위에 두 손을 올려두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지욱아, 너는 엄마 아들이야. 엄마한테 다른 아기가 생겨도 엄마는 언제나 널 사랑해.” “시연 이모가 그랬어...” 배지욱은 갑자기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었다. “그 아기가 사라지면 아빠는 나만 사랑할 거고, 내 말에 따라 엄마랑 이혼하고 시연 이모랑 결혼할 거라고.”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등골이 섬뜩해졌다. 어떻게 아이한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기가 막혔다. 나는 배지욱을 안고 병실로 돌아가서 아이와 얘기를 나눠보려고 했다. 어른들 사이의 일에 아이를 끌어들일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앞으로 발을 내딛기도 전에 내 몸이 뒤로 넘어갔다. 쿵! 강한 충격음과 함께 배지욱의 사과가 들려왔다. “엄마, 미안해. 시연 엄마가 계단에 기름을 부었거든. 시연 엄마가 나한테 엄마를 불러내오라고 한 거야...” 뜨거운 피가 흘러나왔다. 견딜 수 없는 극심한 통증과 함께 가슴이 찢기는 듯한 괴로움이 느껴졌다. 머리도 심하게 어지러웠다. 배지욱! 최근 들어 배지욱은 점점 더 도를 넘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배지욱이 아이라고 항상 봐줬다. 그러나... 아무리 어린아이여도 이렇게 잔악무도한 짓을 해서는 안 되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꼬임에 넘어가 자기 엄마를 해치다니... 나는 배지욱을 보기 위해 필사적으로 눈을 크게 떴으나 그의 모습이 흐릿하게만 보일 뿐이었다. 이내 배지욱은 어디론가 달려가며 복도에서 사라졌고 나는 힘겹게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제발 누가 저 좀 살려주세요...” 하지만 너무 아파서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식은땀이 흘러 점점 더 많아지는 핏물 위로 뚝뚝 떨어졌다. 그 위로 나의 눈물도 떨어졌다. 배지욱... 배지욱! ... “여보...” 배현민의 두 눈에 핏발이 가득 섰다. 늘 독립적이고 강인했던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기는 못 지켰어.” “엄마, 미안해...” 배지욱은 단단히 겁을 먹은 것인지 창백한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말했다. “용서해 줘.” 하지만... 어떻게 용서한단 말인가? 배지욱이 나를 계단 쪽으로 유인했을 때, 날 놔두고 도망쳤을 때... 나는 이미 배지욱에게 완전히 실망했다. 배지욱은 계속해 내게 사과했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지욱은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자기 말을 무시할 줄은 몰랐는지 마지막엔 화를 냈다. “용서하기 싫으면 말아. 어차피 나도 엄마 필요 없으니까.” 나는 고개를 들어 배지욱을 바라보면서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지욱아, 너는 시연 이모가 네 엄마가 되기를 바라지?” 배지욱은 내가 왜 그런 얘기를 꺼내는지 몰라서 망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나는 갑자기 웃었다. “나는 오늘부터 네 엄마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내어줄 거야. 앞으로 나는 더 이상 네 엄마가 아니야. 지욱이 너는 네가 좋아하는 사람을 네 엄마로 삼아.” 배지욱의 눈동자에서 강렬한 희열이 번졌다. 옆에 있던 배현민은 내 말을 듣는 순간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말했다. “여보, 충동적으로 굴지 마.” “걱정하지 마. 나는 매우 차분하니까.” 그렇게 말할 때 내 마음은 파문 하나 일지 않을 정도로 한없이 고요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현민 씨, 우리 그만하자. 내가 물러날게. 그러니까 현민 씨도 날 그만 놔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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