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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배현민은 아쉬운 얼굴로 대답했다. “아이가 있잖아.” “그래서 여지안 씨 몰래 홍시연이랑 지욱이를 만나게 한 거야?” 그 사람은 즐거워하면서 물었다. “지욱이가 홍시연을 엄마로 생각하면서 따르면 너도 지욱이랑 같이 네 첫사랑과 함께 살 수 있으니까.” 다들 같이 떠들어댔다. “역시 현민이는 똑똑하다니까.” “벌써 거기까지 생각해 둔 거야?” 그들의 말대로라면 배현민은 의도적으로 홍시연과 배지욱을 만나게 했다. 그래서 배현민이 시어머님에게 아이를 보냈을 때 시어머님이 바로 아이를 홍시연의 집에 보냈던 것이다. 둘이 가까워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유치원 선생님마저 홍시연을 배지욱의 엄마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고 수없이 다짐했던 내가 너무 멍청하게 느껴졌다. 나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침착하려고 노력했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배현민이 친구의 질문에 대답하기도 전화벨 소리가 울렸고 배현민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응, 시연아.” “뭐? 지욱이가 손목을 그었다고? 잠깐만 기다려. 금방 갈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배지욱은 유치원 앞에서 나와 홍시연 중에서 홍시연을 선택했고, 홍시연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으니 배지욱은 기뻐해야 마땅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마음을 먹은 걸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연달아 충격을 받게 된 나는 온몸에 기운이 빠져서 벽에 몸을 기댄 채로 중심을 잡으려고 애썼으나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지욱아...” 사무실 밖으로 뛰쳐나온 배현민은 나를 본 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나는 배현민의 친구들 앞에서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 의지와 달리 눈물이 자꾸만 흘러나왔다. 배현민의 뒤에 있던 친구들은 모두 넋이 나갔다. 그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배현민은 나의 비참한 모습을 보더니 나를 안아 들며 말했다. “여보, 지욱이 괜찮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나는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가렸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배현민은 거의 달리다시피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고 그의 친구들은 멀리 뒤처졌다. “저 여자가 여지안 씨야?” “몸매도 얼굴도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예쁜데?” “그러니까 현민이가 지금까지 이혼을 못 했지.” “나한테 저렇게 예쁘고 나만 사랑해 주는 아내가 있었으면 평생 잘해줬을 거야.” “현민이 부럽다.” “...” 배현민은 차 문을 연 뒤 나를 조수석에 태웠다. 나는 저항할 힘조차 없어 그저 조용히 차 안에 앉아 있었고 배현민은 내게 안전벨트까지 해주었다. “여보.” 배현민은 내 옆에서 큰 손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러나 내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배현민이 상황을 설명하려고 했으나 나는 그의 말을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일단 병원으로 가서 지욱이 상태가 어떤지 확인해 보자.” 배현민도 배지욱이 걱정되었기에 빠르게 문을 닫은 뒤 차에 시동을 걸고 병원을 향해 달렸다. 배현민은 앞을 바라보면서 왼손으로는 핸들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내 손을 잡으려고 했다. 나는 그의 손길을 피한 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운전에 집중해.” 배현민은 내가 자기를 오해할까 봐 걱정되는 듯했다. “여보, 내가 잘 설명할게.” 나는 좌석에 몸을 기댄 채로 시선을 거두고 눈을 감았다. “처음에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자기가 아니었던 건 사실이야.” 배현민은 거울을 통해 내 표정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언짢은 표정을 하자 황급히 말했다. “하지만 그동안 자기랑 살면서 아이도 생기고 함께 아이를 키우다 보니까...” 나는 거기까지 들은 뒤 눈을 뜨고 배현민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홍시연 씨가 돌아오니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여전히 홍시연 씨였다는 걸 깨달았겠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나는 목이 메어 울먹거렸다. 그동안 배현민과 오랫동안 함께 살면서 묵묵히 그를 위해 헌신했건만 전부 헛수고였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심지어 지금까지 나랑 이혼하지 않은 이유도 지욱이가 자기랑 같이 살겠다고 하지 않을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잖아. 그래서 일부러 홍시연 씨에게 지욱이를 맡기며 둘이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한 거고. 현민 씨.” 나는 흐느끼며 말했다. “지욱이는 이미 홍시연 씨를 받아들였어. 그리고 홍시연 씨를 엄마로 삼고 싶어 해. 현민 씨는 어떻게 할 거야? 언제 나랑 이혼할 생각이야?” 내 말은 점점 거칠어졌다. 배현민은 내가 이렇게 화낼 줄 몰랐는지 당황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아니야, 여보.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봐.” 배현민은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 “사실 시연이가 막 돌아왔을 때 시연이랑 잠깐 연락했었던 건 사실이야. 나는... 내가 시연이를 다시 사랑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아니었어.” 차가 병원 앞에 멈춰 섰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 그런데 배현민이 빠르게 내 앞을 가로막았다. “시연이랑 만났을 때 내 머릿속에는 우리 가족을 배신하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어.” 나는 그를 피해 지나가려고 했으나 배현민이 나를 따라왔다. “당신을 배신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나는 고개를 들어 배현민을 보았고 배현민은 못 말린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우리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잖아. 왜 내 말을 끝까지 다 안 듣고 혼자 삐치고 있어.” 말을 마친 뒤 그는 나를 차 쪽으로 밀어붙이면서 두 손으로 내 얼굴을 받쳐 들고 억지로 내게 키스하려고 했다. 나는 손목을 그은 배지욱의 상태가 걱정되어 배현민과 스킨십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힘껏 밀어냈다. “일단 지욱이부터 보러 가자.” 배현민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서 말했다. “그래.” ... 병실 안, 배지욱은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앉아 있었고 배지욱의 왼팔에는 두꺼운 붕대가 감겨 있었다. 늘 생기가 감돌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나는 간신히 마음을 가다듬었지만 배지욱을 본 순간 또다시 가슴이 아렸다. 나는 배지욱의 곁으로 성큼성큼 걸어간 뒤 조심스럽게 아이의 손목을 쥐고 말했다. “왜 갑자기 자신을 해치려고 한 거야?” 나는 그제야 옆에 홍시연이 있는 걸 발견했다. 내 가정을 파괴하고 나와 내 아들의 사이를 이간질한 홍시연을 보니 이가 갈렸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나는 홍시연을 매섭게 몰아붙였다. “억지로 지욱이를 데려가 놓고서는 제대로 돌보지도 않다니.” 홍시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병상 위에 앉아 있던 배지욱이 갑자기 씩씩대며 말했다. “시연 이모한테 뭐라고 하지 마! 나는 엄마 때문에 손목을 그은 거야. 엄마가 아빠랑 이혼하지 않으려고 했잖아.” 나는 경악한 표정으로 배지욱을 바라보았다. 배지욱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엄마, 엄마는 내가 칼로 손목을 그으면 마음 아프지? 나는 엄마가 마음 아파할수록 더 많이 나를 상처 입힐 거야.” 배지욱은 입술을 달싹였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잔인한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듯했다. “엄마가... 아빠랑 이혼하겠다고 할 때까지 말이야!” 배지욱의 말이 큰 망치가 되어 내 뒤통수를 내리치는 것만 같았다. 머리가 어지러웠던 나는 배지욱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것만 같았고, 가슴도 아파서 숨을 쉬기가 힘들어 숨을 크게 몰아쉬어야 했다. 어떻게 나의 사랑을 볼모로 내게 이렇게 상처를 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배지욱에게 질문을 하기도 전에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다. “여보!” 의식이 흐릿해지는 가운데 배현민의 다급한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의사 선생님!” ... 나는 다음 날 아침에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배현민은 미소 띤 얼굴로 침상 옆에 앉아 기대 어린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여보, 좋은 소식이야.” 최근 연달아 벌어진 끔찍한 일들로 나는 정신을 다잡기 어려웠다. 나는 무슨 좋은 소식이 있겠나 싶어서 건성으로 대답했다. “뭔데?” “자기 임신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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