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화

“저 그런 말 듣기 싫어요.” 나는 이서가 투덜대듯 말하는 걸 들으며 고개를 들었다. 미끄럼틀 위에 서 있던 아이는 홍시연의 친아들 차이혁이었다. 그 눈빛은 또래 아이에게서 보기 힘든, 기이하게도 어른스러운 적의가 담겨 있었다. 나를 향한 시선에는 노골적인 혐오가 깃들어 있었다. 나는 원래 그들과 얽히지 않으려 했다. 홍시연의 민낯을 드러낼 증거만 찾으면 다시는 그 집안과 엮일 일은 없을 거라 다짐했었는데 먼저 시비를 걸어온 건 그쪽이었다. 예전부터 그들이 나를 도발해도 나는 늘 참고 넘겼기에 나를 만만히 여겼던 것이리라. 하지만 이번에 그들은 이서까지 건드렸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이 사람들은 끝도 없이 날 짓밟을 게 뻔했다. 나는 냉기를 거두고 이서에게만은 부드럽게 말했다. “이서야, 다른 사람이 시비를 걸어오는데 우리가 피하면 그땐 오히려 더 심하게 괴롭힘당할 수 있어. 이해하니?” 이서는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곽민재를 바라봤다. “아빠, 정말이에요?” 곽민재는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는 미끄럼틀을 내려와 다시 올라가려던 차이혁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는 노골적으로 나를 노려봤지만 나는 그의 시선을 무시한 채 낮게 물었다. “아까 내 딸한테 뭐라고 했어?” 그는 비웃듯 되물었다. “쟤 원래 말도 못 하잖아?” 차이혁은 이서가 우리한테 얘기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차갑게 잘라 말했다. “안타깝게도 우리 이서는 말도 잘하고 네가 한 말 전부 그대로 내게 전해 줬어.” 내 눈빛이 워낙 매서웠는지 아이는 순식간에 겁을 먹고는 외쳤다. “엄마! 여지안이 나 괴롭혀!” 멀찍이서 폰을 만지던 홍시연이 비로소 상황을 눈치채고 다가왔다. “어른이면 어른답게 굴어야지. 왜 애를 괴롭혀요?” 나는 싸늘하게 받아쳤다. “네 아들이 내 딸한테 아무 짓도 안 했다면 어떤 행동을 하든 신경 쓰지도 않았을 거야.” 홍시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둘러댔다. “애들끼리 좀 다투는 건 흔한 일이잖아요.” 홍시연은 이 일을 대수롭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