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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반려 관계를 해지하려면 각인한 자와 각인 당한 자가 함께 혼인관리청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그녀와 반려 관계를 맺은 수인은 테온으로 그는 반란자 연맹의 일원이었다. ‘쯧, 골치 아프게 됐군.’ “그럼 이제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기억나는 대로 뭐든 말해주세요. 가족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성지우는 그의 말에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가족은 이미 다 죽어버렸거니와 이 세계에 있지도 않았으니까. “그게... 이름 말고는 기억이 잘 안 나요. 아까부터 떠올리려고 애쓰고 있는데 머리가 텅 비어버린 것처럼 하얘요.” 지금은 기억상실이라는 고전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방법이 잘 먹혔는지 레스더의 눈빛에 연민이 살짝 어렸다. 홍등가에 끌려가 갖은 성적인 학대를 받은 탓에 충격을 받아 기억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레스더는 밖에 있는 부관을 부르더니 성지우의 신체검사를 예약하라고 했다. [경고! 경고! 지우 님, 신체검사를 거절해주세요. 아니면 수인들에게 지우 님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들켜버리고 말 거예요!] 갑작스러운 경고음에 성지우는 레스더를 바라보며 다급하게 물었다. “저기! 저... 신체검사는 안 하면 안 될까요?” “안 됩니다. 몇 년 전부터 지하 체육관은 극악무도한 무뢰배들이 점령하고 있어 이상한 바이러스를 지닌 이들 또한 많아졌습니다. 그러니 건강을 위해 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레스더는 단호하게 말한 후 오늘은 일단 쉬라며 방을 나가버렸다. 홀로 남겨진 성지우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어떤 핑계를 댈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봐도 마땅한 핑곗거리가 떠오르지 않았고 그렇게 다음날이 되었다. 밤새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계속 고민만 하다 보니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일어나지 얼마 안 가 레스더가 문을 똑똑 두드리며 들어왔다. 그의 옆에는 작은 로봇도 함께 있었다. 로봇은 안으로 들어오더니 손에 든 에너지 드링크를 성지우에게 건넸다. “주인님, 드세요.” 에너지 드링크를 받은 성지우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레스더가 자리에 앉으며 설명해주었다. “에너지 드링크입니다. 필요한 에너지와 영양소를 배합한 것이죠. 여기는 군용 에너지 드링크밖에 없어 맛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따 병원에 가면 따로 배합해 달라고 할 테니 그전까지 조금만 참아주세요.” ‘근데 여기가 어디지?’ 성지우가 방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인가요?” “저희 집입니다.” “아...” “지하 체육관에서 잡힌 죄수들이 워낙 많아 당신은 이곳에서 심문하는 거로 결정 났습니다. 물론 신체검사를 마치고 결과가 나오면 그때는 당신도 감옥으로 가게 될 겁니다.” ‘뭐? 감옥?! 아니, 매음굴에 팔린 것도 억울한데 내가 감옥을 왜 가?!’ 성지우는 순간 열이 받아 에너지 드링크를 벌컥벌컥 마셨다가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맛에 고통스러운 신음을 냈다. 하지만 지금은 최대한 에너지를 보충해둬야 했기에 억지로 끝까지 전부 다 마셨다. 물론 마시고 5초도 안 돼 전부 다 토해버렸지만 말이다. 잠시 후, 성지우는 레스터 저택의 차량을 타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말이 차량이지 하늘을 나는 하나의 집이나 다름없는 크기의 비행 수단이었다. 레스더 저택의 로봇들도 그렇고 하늘을 나는 비행차까지, 뭐가 됐든 이곳은 과학이 꽤 발달한 곳인 건 틀림없어 보였다. 세이로 병원. 해당 병원은 힐턴 제국에서 제일 큰 병원이었다. 병원장은 친히 입구까지 나와 레스더와 안부 인사를 나누더니 곧바로 간호사에게 성지우를 신체 검사실로 데려가라고 했다.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부드러운 음성이라 그런지 성지우도 긴장이 한결 풀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꼭 검사를 해야 하나요?” 성지우가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레스더는 그녀가 한번도 신체검사를 받아보지 못해 두려워하는 거라 생각해 조금 부드러운 태도로 그녀를 달랬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검사실 밖에서 기다려드릴 테니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저를 부르세요.” ‘하... 이러면 할 수밖에 없잖아.’ 성지우는 속으로 한숨을 한번 내쉬더니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시원하게 검사하고 핑곗거리나 만들어 놓자고 생각했다. 검사실로 들어가니 친절해 보이는 여의사가 있었다. 하라는 대로 다 하고 나오자 레스더가 정말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원장실로 가서 기다리면 이따 원장님이 결과지를 가지고 올 겁니다.” “네, 알겠어요.” 잠시 후, 원장이 결과지를 손에 들고 원장실로 들어왔다. 그는 의자에 앉자마자 꽤 심각한 얼굴로 성지우를 훑어보며 물었다. “아가씨는 저희 별 사람이 아닌 건가요?” 성지우는 그 말에 흠칫했다. 역시 숨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병원장은 몸이 뻣뻣하게 굳은 그녀를 보더니 자신이 조금 무섭게 얘기한 건가 싶어 목소리를 부드럽게 바꿨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지금 이곳에는 저희 셋밖에 없습니다. 말을 길게 하는 게 불편하시면 ‘예’, ‘아니요’로만 대답하셔도 돼요.” 성지우는 이에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아가씨는 태초의 인간입니까?” 줄곧 무표정한 얼굴로 있던 레스더가 원장의 말에 깜짝 놀라며 동물 특유의 번뜩이는 눈으로 성지우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원장의 손에 든 결과지를 빼앗으며 자세히 훑어보았다. 성별: 암컷 (인간) 나이: 22 생식 능력: SSS+급 이능력: 미상 (잠재적 SSS+급) ... 생식 능력이 최고등급인 SSS+급이라니, 이건 나라 전체가 들썩일 만한, 아니, 은하계가 들썩일 만한 일이었다. 원장은 심각한 얼굴의 레스더를 보며 말했다. “이 아가씨는 인간들의 세계에서는 이미 성인이지만 수인들의 세계에서는 이제 막 태어난 아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임신까지 한 상태고요. 대령님, 이걸 어떻게 하면 좋죠?” 레스더는 결과지를 잡은 손을 미세하게 떨기만 할 뿐 그렇다 할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러자 원장이 다시금 말을 이었다. “이능력이 잠재적 SSS+급이라고 나온 건 측정기 수치가 SSS+였다가 0이었다가를 반복하며 매우 불안정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저희 별의 영향을 받아 이능력이 갑자기 생겨버린 탓에 이러한 수치가 측정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미 유아기에 이능력 컨트롤 법을 배운 수인들과 아가씨는 아직 컨트롤를 배우지 못한 이유도 있고요.” “나가보세요.” “네?” 원장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멍청한 얼굴로 되물었다. “일단 나가보시라고요.” “아... 네! 그럼 대화 나누십시오.” 원장이 나간 후 원장실에는 성지우와 레스더 두 명만 남았다. 성지우는 레스더 몰래 시스템 창을 움직이며 수인 세계의 자료를 다시 한번 훑었다. ‘음... 그러니까 내가 생식 능력과 이능력 모두 제일 높은 최상위등급이란 말이지? SSS+급 이능력을 가진 수인은 온 우주가 탐내는 인재로 먹고살 걱정은 없다라... 좋은데? 그럼 일단 생명에 위협이 될 만한 일은 없겠네?’ 성지우는 안심이 되는지 그제야 한결 풀어진 얼굴로 주위를 훑어보았다. 원장실의 벽면에는 꽤 많은 훈장과 인증서 그리고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인증서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 [볼찬 가 후원 병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볼찬? 왜 이렇게 익숙하지? 아, 레스더!’ 성지우는 빠르게 레스더의 풀네임을 떠올렸다. ‘어쩐지 저택이 크고 로봇들도 많더라니, 유명한 가문의 자제분이셨구만?’ “배 속의 아이, 지우는 거로 합시다.” “예?” 성지우가 갑작스러운 말에 레스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레스더가 손에 든 담배를 끄며 다시금 말했다. “당신 배 속에 있는 아이는 반란자 연맹의 피가 흐르는 아이입니다. 그러니 지우는 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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