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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나가.” 라우엘은 레스더의 눈빛을 받고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사실 여기 오기 전에 아버지한테 등급을 얘기해줬더니 나한테 더 이상 이능력을 키우는 훈련은 하지 말래. 볼찬 가가 우리 형제에서 끊길까 봐 두려우신 거지.” 라우엘이 입을 삐죽였다. “SSS+급은 아이를 갖는 게 어려울 뿐이지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잖아. 혹시 알아? 운 좋게 SS급한테서 예쁜 아이를 보게 될지?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마음이 동하면 용기를 내서 잡으라고. 그리고 연애는 해봐야 할 거 아니야. 안 그래?” 라우엘은 말을 마친 후 빠르게 서재를 빠져나갔다. “머리 좀 컸다고 날 가르치려 드네? 참나.” 레스더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라우엘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아이라...” 레스더가 펜을 굴리며 조금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도 한때는 라우엘처럼 어쩌면 운 좋게 아이를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품었었다. 하지만 그 희망은 병원으로 가 정기 검진을 받을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무너졌다. 의사들이 하나같이 99% 확률로 불가능하다고 했으니까. 남은 1%에 걸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희박한 확률이라 괜한 미련을 가지는 것보다는 아예 포기해버리는 게 나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연애는 물 건너갔고 반려 관계를 맺는 것도 그와는 상관없는 얘기가 되어버렸다. ...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후, 성지우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들여 수인 세계의 규칙과 각종 법규를 최대한 머리에 집어넣었다. 일주일 정도가 지나니 배가 어느새 조금 불러온 게 느껴졌다. 지나치게 빠른 발육 속도에 이상함을 느껴 서둘러 시스템을 불러오자 원래 수인들의 임신주기는 한 달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아이를 뱄다는 게 무섭기도 했지만 빠르게 불러오는 배와 더불어 태동까지 느껴지자 이제는 아이가 태어나는 걸 점점 기대하게 되었다. 두려움이 기대로 바뀌기까지 단 보름밖에 걸리지 않았다. 보름이라는 시간 동안 성지우는 한번도 레스더를 보지 못했지만 대신 라우엘은 꽤 자주 만났다. 라우엘은 인간들 나이로 15살쯤이었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무척이나 밝았고 친화력도 좋아 성지우는 그와 빠르게 친해지게 되었다. 오늘도 역시 라우엘은 저택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부터 찾았다. “지우 누나, 나 이틀 뒤면 다시 학교도 가야 하고 본가로도 돌아가야 해. 가기 전에 기념이 될 만한 선물을 주고 싶은데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예산은 얼마나 잡고 있는데?” 성지우는 이미 라우엘을 친구로 보고 있었기에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 “음... 1억 정도? 다음 달이면 다시 용돈을 받긴 하는데 그때까지 기다리다가는 답답해 죽을 테니까 1억 정도에서 골라 봐.” “그럼 오늘 한번 잘 생각해 볼게. 마침 심심했는데 잘 됐다.” 라우엘은 심심하다는 그녀의 말에 눈을 반짝였다. “심심해? 그럼 휴대폰에 인튜브 어플 깔아봐. 뉴스나 재밌는 영상 보노라면 하루가 다 가 있을걸? 나도 가끔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 때는 침대에 누워서 그것만 봐.” “난 휴대폰이 없어. 그래서 뭘 깔고 싶어도 못해.” “그래? 그럼 내가 휴대폰 사줄게. 지금 주문하면 반 시간 조금 안 돼서 드론으로 배달해줄 거야.” “정말?” 성지우가 눈을 반짝였다. “응!” “그럼 선물은 휴대폰으로 받을게.” “응? 고작 휴대폰으로 되겠어?” 라우엘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응, 난 휴대폰이면 충분해! 그리고 애초에 비싼 거 사달라고 할 생각도 없었어.” “흠, 그럼 나중에 여기로 다시 올 때, 그때는 꼭 비싼 거로 선물해 줄게!” “하하하, 그래.” 라우엘은 말을 마친 후 성능이 제일 좋은 휴대폰으로 골라줄 거라며 열심히 휴대폰을 훑어보았다. 성지우는 미소를 지은 채 그를 바라보다 문득 그의 형인 레스더의 얼굴을 떠올렸다. 보름이나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으니 아마 그녀 같은 건 이미 진작에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차라리 그가 잊어버리는 게 성지우에게는 더 나았다. 앞으로도 계속 이 세계에서 생존해야 할 텐데 누군가의 기억 속에 범죄자로 낙인찍혀봤자 도움 될 거 하나 없으니까. 물론 그녀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레스더 입장에서는 그녀가 다른 범죄자와 다를 것 없을지도 모르니까. ‘그건 그렇고 아이를 낳고 나면 그때는 어떡하지? 레스더가 나가라고 하려나? 하긴 그럴 수밖에 없겠지. 친한 사이도 아닌데.’ 성지우가 미래에 대해 생각하던 그때 윙윙 소리가 나며 드론이 휴대폰을 배달해왔다. 라우엘은 휴대폰 사용법을 하나부터 열까지 아주 자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이곳의 휴대폰은 그녀가 예전에 썼던 것과는 다른 점이 많아 확실하게 배워둬야 했다. 이것저것 배우던 중에 신분증으로 인증해야 하는 것이 있었다. 신분증이 없으면 제일 기본적인 어플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인터넷에 연결할 수도 없기에 라우엘은 신분증이 없는 그녀를 위해 저택에 있는 도우미의 신분증을 하나 얻어왔다. 인증이 완료되자 인터넷은 자동으로 연결되었고 목소리까지 넣어두자 휴대폰은 마치 그녀만을 위한 로봇처럼 오직 그녀의 명령에만 반응했다. “어플 깔아뒀으니까 한번 명령해봐.” 명령하는 건 쉬웠다. “인튜브 켜줘.” 어플이 켜지고 뉴스와 예능, 군사 등 각종 채널이 한가득 쏟아졌다. “참, 들고 다니는 게 귀찮으면 워치나 액세서리 같은 형태로 변환해봐.” “우와. 그런 것도 돼?” “그럼!” 이곳의 휴대폰은 형태도 자유자재로 변환할 수 있고 따로 유심을 넣을 필요 없이 전화할 수 있어 매우 편리하고 좋았다. 성지우는 이것저것 누르다 군사 채널에 들어가게 됐고 눈에 띄는 문구 하나를 보게 되었다. [반란자 연맹이 일반 시민들로 위장해 제국 내부로 들어오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었으니 늦은 밤에는 최대한 외출을 자제해주시길 바랍니다.] 라우엘은 성지우가 무서워한다고 생각해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누나, 걱정하지 마! 우리 형이 이미 병사들을 보내서 수색 중이니까 아마 얼마 안 가 금방 잡을 수 있을 거야.” 레스더가 요즘 바쁜 것도 다 이것 때문이었다. 라우엘은 뭔가 생각난 듯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며 성지우를 바라보았다. “누나, 그래서 대체 우리 형이랑은 무슨 사이인 건데? 그리고 그 배 속의 아이는 누구 아이고. 우리 형 아이면 나 진짜 기쁠 것 같아. 형도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거면 나도 나중에 등급이 높아져도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잖아!” 성지우는 잔뜩 흥분한 그의 등을 토닥이며 일단 진정시켰다. “그런 거 아니야. 나는...” ‘지금 여기서 라우엘한테 내가 범죄자라 여기 갇혀있는 거라고 얘기하면...’ 성지우는 자신의 정체를 말하는 순간 라우엘과 멀어지게 될까 봐 두려웠다. “너희 형 아이 아니야.” “그래? 아쉽네.” 라우엘은 잠깐 실망하는 듯하더니 금세 다시 활짝 웃었다. “참, 형이 저택에 사냥개를 하나 들였는데 한번 보러 갈래?” 성지우는 수인 세계의 사냥개는 본 적이 없기에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가씨, 조심하세요.” 그녀가 일어나자마자 도우미 한 명이 다가와 그녀를 부축했다. 해당 도우미는 임신하고 일주일이 조금 넘어가던 차에 레스더가 그녀 담당으로 지정해둔 사람이었다. 성지우는 지금 인간으로 치면 임신 7개월 차라 걷는 것도 힘이 들었기에 도우미의 손길이 꼭 필요했다. 세 사람은 저택의 제일 뒤편에 있는 사냥개 사육장 앞에 도착했다. 사육장 뒤에는 강이 흐르고 있어 도둑이 들 걱정은 없었다. 사육장 안으로 들어가 보니 호랑이보다 더 큰 것 같은 사냥개 한 마리가 케이지 안에 갇혀있는 것이 보였다. 두 눈이 빨갛게 변해버린 것이 상당히 흥분한 것 같았다. 성지우는 생각보다 더 무서운 사냥개의 비주얼에 겁을 먹고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런데 그때 사육장 안에 있던 로봇 두 대가 갑자기 폭발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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