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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성지우는 도우미의 부축으로 천천히 걷느라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지만 라우엘은 로봇이 터지는 충격을 그대로 받아버려 몸이 완전히 옆으로 날아가 버렸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터진 것이기도 하고 거리 계산도 완벽하게 되었던 탓에 저택 앞쪽에 있는 로봇들은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했다. “라우엘!” 성지우가 라우엘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곁으로 다가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검은색 양복 차림의 남자 한 명이 담벼락을 넘어 사육장 안으로 들어왔다. 몸에 물과 진흙이 묻어있는 것이 강을 그대로 헤엄쳐서 온 것 같았다. 도우미는 남자의 등장에 바로 성지우를 자신의 뒤에 세워두며 경계태세를 취했다. 성지우는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려 하자 얼른 배를 감싸며 미친 듯이 시스템을 불렀다. ‘야, 시스템! 시스템! 나 이대로 죽으면 퀘스트 못해! 빨리 어떻게 좀 해봐!’ 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시스템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대로 죽는구나 싶어 입술을 꽉 깨무는데 갑자기 남자가 발걸음을 돌리더니 그대로 사육장을 떠나버렸다. ‘뭐지...? 뭐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리를 죽일 것처럼 다가와 놓고 왜 그냥 가?’ “아가씨, 잠시만 여기 계세요. 병사들을 불러올게요.” 도우미가 떠난 후 성지우는 얼른 라우엘의 옆으로 다가가 상처를 확인했다. 얼굴 몇 군데 상처가 나고 옷이 군데군데 찢어지기는 했지만 폭발이 일어난 순간 급하게 이능력을 써서 방어한 덕에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도우미가 떠나고 얼마 안 가 병사들과 비행차들이 줄지어 사육장에 나타났다. 그들 중 한 팀은 서둘러 라우엘을 차에 태웠고 다른 한 팀은 킬러의 행적을 쫓았다. 그 시각, 레스더 저택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한 건물 안. 어두컴컴한 방이 에릭의 손에 의해 밝아졌다가 금세 다시 어둠에 휩싸였다. 에릭은 커튼이 다시 쳐진 것을 보더니 아무 말 없이 테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테온은 매번 기분이 안 좋을 때면 늘 이렇게 어둠 속에 자신을 가둬두곤 했다. 수인은 어둠에 영향을 받지 않는 종족이라 아무리 어두운 곳이라도 대낮처럼 눈앞이 훤히 보였다. 테온은 기다란 손으로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며 몇 분 전에 봤던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그날 밤 몸을 겹친 여자가 멀쩡히 살아있는 것도 모자라 임신까지 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힐턴 제국에 연맹 사람들을 잠입시킨 건 멍청하게 잡힌 것들이 쓸데없이 입을 놀리기 전에 확실히 목숨을 끊어놓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날 곧 죽어가던 여자도 확실히 죽여버릴 것을 명했다. 그런데 킬러의 몸에 장착된 소형 카메라로 여자의 남산만 한 배를 본 순간 그는 저도 모르게 킬러의 행동을 멈추며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대로 다시 돌아오라고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만큼 멍청한 짓이 또 없었다. SSS급인 자신의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암컷이 있을 리 없으니 말이다. 즉, 그 배 속의 아이는 다른 수컷의 것이 틀림없었다. 테온은 음산한 얼굴로 담배를 끄더니 성지우의 모습이 담긴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저거 죽이고 와.” 에릭은 어딘가 익숙한 얼굴에 몇 초간 고민하다 뭔가 떠올리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도련님, 저 배 속의 아이 설마 도련님...” “그럴 리 없어.” 에릭은 차가운 그의 말에 얼른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실언했습니다. 이번 일로 저택의 보안이 더 강화됐을 테니 두 명 더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테온은 가만히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생각이 바뀌었어. 저건 내가 처리한다.” “네, 알겠습니다.” ... 성지우는 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 라우엘 걱정만 했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친해진 마음이 통하는 친구였으니까. 성지우는 거의 30분에 한 번씩 로봇에게 라우엘의 상황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로봇의 매번 똑같은 대답만 늘어놓았다. “죄송합니다. 라우엘 도련님에 관해서는 아직 그 어떤 소식도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소식이 오면 즉시 얘기해 드릴 테니 안심하세요, 주인님.” 도우미도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둘째 도련님은 아무 일 없을 겁니다. 아까 아가씨를 보호할 때 도련님이 이능력으로 방어한 것을 저도 확실히 봤어요. 그러니 큰 상처는 없을 겁니다. 아이도 있으신데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네, 그래야죠.” 성지우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며 바깥의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때 로봇이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주인님, 큰 도련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레스더가?’ 성지우는 도우미의 부축을 받으며 서재에 도착했다. 서재 안은 기밀문서가 많아 레스더는 로봇을 배치한 외에 병사 두 명을 더 배치해두었다. “서재는 도련님만 출입 가능한 곳입니다. 다시 돌아가십시오.” “그럼 제가 찾아왔다고 얘기라도 전해줄 수 있을까요?” “죄송하지만 대령님께서 그 어떤 방해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성지우는 병사의 말에 잔뜩 실망하며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이렇게도 안절부절못하는 건 라우엘이 그렇게 된 것에 자신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왜 아직 아무런 연락도 없는 거야...’ “아가씨, 디저트를 준비해 드릴까요?” 도우미가 기분을 풀어주려는 듯 물었지만 지금의 성지우는 무엇을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아니요. 지금은 입맛이 없네요.” “준비해주세요.” 그런데 그때 문밖에서 레스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지우는 조금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레스더?” 레스더는 아직 군복차림이었다. 얼굴을 보니 그간 밤낮으로 일을 너무 열심히 한 건지 많이 피로해 보였다. “서재까지 왔었다고 들어서 찾아왔습니다. 혹시 급한 일일까 싶어서.” “일하는 데 방해가 된 건 아니죠...?” “그건 아닙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도우미는 벌써 디저트 세팅을 다 마쳤다. “라우엘은 좀 어때요? 괜찮은 거예요?” “큰 상처는 아니라 며칠 휴식하면 금방 괜찮아진다고 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성지우는 그 말에 그제야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다행이네요. 아, 점심은 드셨어요?” “아직입니다.” 레스더가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성지우가 자신의 앞에 놓인 케이크를 그의 앞으로 밀었다. “그럼 이 케이크 한번 드셔보세요.” 레스더는 눈앞에 놓인 케이크를 빤히 바라보았다. 수인은 인간들과 달리 에너지 드링크 하나로 식사가 되는 편이었기에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이런 케이크 같은 건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이건 뭡니까?” 성지우는 그 말에 신기한 걸 본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케이크잖아요. 모르세요?” “네,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보다 더 큰 것도 있어요. 생일이면 먹는... 설마 이곳은 생일도 안 챙기는 건 아니죠?” “생일은 저희도 챙깁니다. 다만 케이크 같은 건 먹지 않고 보통은 파티를 열게 됩니다.” ‘아하... 부자들은 역시 다르다 이건가?’ 성지우는 얘기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에게 포크를 들이밀었다. 레스더는 성지우의 요구대로 케이크를 한입 입에 넣었다. 입안에 넣자마자 퍼지는 달콤한 향기와 부드러운 식감에 레스더는 저도 모르게 눈을 커다랗게 떴다. “맛이 좋네요. 한번도 먹어본 적 없는 맛입니다.” 성지우는 레스더가 표현에 인색한 사람인 걸 알기에 눈이 커지는 걸 보고 지금 그가 상당히 맛있어한다는 것을 바로 눈치챘다. “이것도 드셔보세요.” 레스더는 성지우가 건넨 타피오카 밀크티를 마시더니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이것도 너무 맛있네요.” “그렇죠? 아주머니가 맛있게 만들어주셨어요.” “레시피는 당신이 가르쳐 줬겠네요.” 도우미는 그 말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네. 아가씨가 한 것처럼 똑같이 구현해내느라 애 좀 먹었습니다. 그래도 맛있는 걸 만들 수 있게 돼서 기분은 좋더라고요.” “확실히 맛있네요.” 레스더는 맛있다는 말만 벌써 세 번째 하고 있었다. 성지우는 이에 괜히 뿌듯해져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지우 님, 다음 각인 상대로 저는 레스더 대령도 좋은 것 같아요. 얼굴도 잘생긴 데다 지위도 높고 돈도 많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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