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방금 한 말 다시 해봐.”
테온은 금방이라도 성지우를 죽일 것처럼 무서운 살기를 내뿜었다.
성지우는 이에 흠칫했지만 눈을 피하거나 겁먹은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다.
“네 아이를 임신했다고. 네가 나 죽이면 나도 이 아이 죽일 거니까 알아서 해.”
“네 배 속에 있는 게 내 아이인지는 어떻게 증명할 건데?”
“그야 병원으로 가서... 아니다. 이번 달 말에 출산하니까 그때 다시 나 찾으러 와.”
“하? 이게 얕은수를 쓰려고 하네? 네가 밴 게 내 아이인지 확인도 안 한 채로 널 놔줬다가 네가 도망가면? 그럼 나만 등신 되는 거잖아.”
테온은 그렇게 말하며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더니 그대로 성지우를 향해 겨눴다.
‘이 미친놈이 진짜!’
“잠시만요! 컴퓨터에 아가씨가 받았던 신체검사 데이터가 남아 있어요. 세이로 병원에서 받은 거라 조작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가져와.”
“네.”
테온의 지시에 에릭은 도우미를 기절해버린 후 컴퓨터를 켜 데이터를 휴대폰에 전송했다.
테온은 성지우의 신체검사 결과지를 확인해보더니 넋을 잃은 얼굴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련님, 괜찮으세요?”
그러다 에릭이 불러서야 다시 정신을 차리며 휴대폰을 도로 에릭에게 건네주었다.
“저 도우미는 이만 던져버려.”
“네, 알겠습니다.”
에릭이 지시대로 도우미를 비행차에서 던지려고 하자 성지우가 다급하게 그를 말렸다.
“던지지 마! 아주머니 던져버리면 네 아이 죽여버릴 거야!”
테온은 처음 보는 성가신 타입에 혀를 차며 에릭에게 멈추라는 손짓을 했다.
“됐어?”
“나랑 아주머니의 안전을 꼭 보장해줬으면 좋겠어!”
“요구는 그게 끝인 거지?”
“응.”
성지우는 잔뜩 긴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당분간은 살려주도록 하지.”
테온은 그렇게 말하며 유유히 침실을 벗어났다. 그리고 에릭도 그의 뒤를 따라 조용히 사라졌다.
비행차가 다시 움직이는 것을 느낀 성지우는 얼른 침대 아래로 내려가 도우미를 깨웠다.
“으음... 아가씨?”
도우미는 머리를 짚으며 천천히 일어나더니 이내 눈을 크게 뜨고 성지우의 팔을 잡았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저놈들이 무슨 짓 한 건 아니죠?”
“네, 괜찮아요. 그보다 아주머니, 오늘 일은 비밀로 해주세요. 절대 누구한테도 얘기하지 마시고요. 그래 줄 수 있죠?”
성지우의 말투에 협박이 살짝 묻어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가씨가 제 목숨을 구해준 그 순간부터 저는 이미 아가씨 사람이에요.”
도우미의 진심이 담긴 눈빛과 말에 성지우는 안심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기가 어딘지 혹시 알아요? 이 비행차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은데.”
도우미는 창밖을 바라보더니 이내 심각한 얼굴을 했다.
“도심이라면 몇 번 와봐서 잘 알고 있는데 여기는 처음 보는 곳이네요. 아무래도 도심에서 훨씬 벗어난 것 같아요.”
“네?! 저 미친놈이 대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려고!”
“아가씨, 아까 저 남자가 킬러 얘기를 한 걸 보면 그때 아가씨를 죽이려 했던 것도 저 남자인 것 같아요.”
“그럼 이제 어떡하죠?”
성지우의 말에 도우미가 주변을 한번 훑어보았다. 지금은 문이 뜯어진 상태였기에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고 조용히 움직여야 했다.
물론 그래봤자 테온의 이능력으로 전부 다 감지되고 있지만 말이다.
도우미는 침실을 한번 훑으며 통신기기를 전부 다 체크했다. 하지만 전파가 차단되어 쓸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가씨, 지금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성지우는 그 말에 초조해져서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대로 그들의 영역으로 가게 되면 아이를 무사히 낳는다고 해도 문제였다. 아이만 홀라당 데려가고 그녀는 죽여버릴 수도 있으니까.
“어떡하지? 어떡하지?”
그때 성지우의 목에서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아가씨, 이건...”
도우미가 주운 물건을 본 성지우는 며칠 전에 휴대폰을 목걸이로 전환해뒀던 것을 떠올리고는
활짝 웃었다.
‘아... 전파 차단 됐지?‘
“아가씨, 여기요.”
성지우는 도우미가 건넨 휴대폰을 가만히 바라보며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문자를 한번 보내보기로 했다.
휴대폰이 도착한 그 날 라우엘이 그와 레스더의 연락처를 저장해두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레스더, 저 성지우예요. 제 문자 보이면 답장해 주세요.]
성지우는 문자가 전송된 순간 기뻐서 눈물이 다 나왔다.
그녀는 서둘러 도우미에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며 문자가 전송됐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잠시 후, 도우미와 완벽한 작전을 짠 성지우는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 냉장고에 있는 음료수를 꺼냈다.
그녀는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테온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뭐, 너도 줘?”
그 말에 테온은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리며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달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성지우는 잠시 고민하다 결국에는 술 한 병을 들고 와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테온은 탁자 위에 놓인 술을 한번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왜, 날 취하게 만들고 그 틈을 타 도망이라도 가시게?”
“아니거든? 그냥 너는 술을 좋아하지 않을까 해서 가지고 온 거야.”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테온이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성지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무슨 꿍꿍이인지 알아내려는 듯한 눈빛이었다.
“냉장고에 남은 거라고 차랑 술밖에 없는데 그럼 차로 줘?”
“됐어.”
테온은 피식 웃더니 이내 술병을 들고 손으로 뚜껑을 열어버렸다.
‘저걸 손으로 한다고? 안 아픈가...?’
“쯧쯧, 볼찬 가가 요즘 재정 상태가 안 좋나? 이딴 것도 술이라고.”
테온은 한 모금 마시더니 바로 술을 옆으로 치워버렸다.
“있는 대로 마실 것이지. 까탈스럽게.”
성지우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뭐?”
“아, 아니야. 그보다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당연히 우리 집이지. 네가 내 애를 끝까지 지키려는 것도 다 내 지위가 탐나서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