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하? 뭐 이런 도끼병 환자가 다 있어?’
성지우는 세상이 다 자기중심대로 돌아간다고 믿는 듯한 뻔뻔한 그의 얼굴에 기가 막혔다.
“미안한데 모든 이가 다...”
성지우는 모든 이가 다 네 신분에 침을 질질 흘릴 거라 착각하지 말라고 하려다가 말을 멈췄다.
지금 이 상황에서 굳이 그의 심기를 건드릴 필요는 없었으니까.
“모든 이가 다 뭐?”
“아니야. 못 들은 거로 해.”
테온은 그 뒤에 올 말이 결코 좋은 말은 아니었을 거라는 걸 그녀의 태도로 확신했다.
“쯧, 이래서 암컷들은.”
그는 이 말을 남긴 채 소파에서 일어나 조종실로 향했다.
‘저게 진짜!’
성지우는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실컷 욕을 하다 문득 자신의 팔에 새겨진 뱀 문양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이걸 까맣게 잊고 있었네?’
신체 검사하던 당시 간호사가 그녀의 팔에 새겨진 뱀 문양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반려 관계를 이미 맺으셨군요.”
그리고 임신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축하의 말까지 잔뜩 건네주었다.
성지우는 그때부터 팔에 새겨진 뱀 문양의 표식이 지금 자신을 납치한 남자와 연관이 있을 거라는 것을 어느 정도 확신했다.
다만 어떻게 하다 이 표식이 새겨졌는지는 몰랐다.
‘기절했을 때 저 미친놈이 나한테 새긴 건가?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딱히 아픈 느낌은 없는데? 그리고 왜 하필 뱀이지?’
그때 침실 쪽에서 도우미가 고개를 빼꼼 내밀며 그녀에게 손짓했다.
이에 성지우가 얼른 침실로 달려가자 도우미가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아가씨, 됐어요! 대령님과 연락해서 실시간 위치를 알 수 있게 했어요. 아마 곧 병사들을 끌고 저희를 구하러 와주실 거예요!]
성지우는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인 점은 있었다. 왜 비행차 안의 모든 통신기기가 다 안 되는데 그녀의 휴대폰은 문자를 보낼 수 있는지.
‘무사히 여기서 구출되면 레스더한테 물어봐야지.’
잠시 후, 5분 정도 지났을까 하늘에서 요란한 경보음이 울렸다.
“대령님인가 봐요!”
도우미가 잔뜩 흥분하며 성지우를 일으켜 세웠다.
창가 쪽으로 걸어가 상황을 확인해보니 소형 우주 전함 두 대가 비행차 뒤에 따라붙으며 지금 당장 인질을 풀어주지 않으면 공격하겠다는 경고음을 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비행차 한 대가 나타나 우주 전함을 공격했다. 하지만 체급 차이가 워낙 컸기에 비행차는 금방 우주 전함의 공격 한방으로 가루가 되어버렸다.
테온은 책상을 탁하고 내리치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어떻게 된 거야! 전파를 전부 차단했다며? 그런데 왜 힐턴 제국 놈들이 쫓아오고 있어?!”
에릭도 그게 의문이었다. 혹시 몰라 전파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해봤지만 역시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제 생각에는 힐턴 제국의 국경에 들어선 순간부터 계속 따라붙었다가 시민들이 아예 없는 장소로 이동하니 그제야 모습을 드러낸 것 같습니다.”
테온은 뭔가 석연치 않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도련님, 몰래 따라붙었던 4번 비행차가 처리되었습니다. 또 한 대를 보내 시선을 유도할까요?”
“그래.”
후대를 남기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었기에 테온은 어떻게든 성지우를 집까지 데리고 가야만 했다. 만약 성지우 배 속의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면 그때는 그녀를 죽여버리면 된다.
침실.
“에취!”
성지우가 재채기하자 도우미가 걱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이러지 말고 얼른 침대로 가서 쉬세요.”
“괜찮아요.”
‘누가 내 얘기를 하나 보지 뭐.’
한편, 레스더는 군복을 입은 채 우주 전함의 조종실에 서 있었다.
“대령님, 비행차가 속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아예 이대로 들이받아 버릴까요?”
“그건 안 돼. 인질이 다칠 수도 있다.”
카를이 대신 말하며 레스더의 눈치를 힐끔 보았다.
사실 레스더가 직접 현장에 나타나 지휘를 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보통 인질을 탈환 일은 대위에게 맡기곤 했으니까.
“인질의 안전을 보장하는 동시에 비행차를 제압하는 것으로 한다. 알겠나?”
레스더가 명령을 내렸다.
“네, 알겠습니다!”
성지우와 아이가 반란자 연맹의 손에 넘어가는 일만큼은 꼭 피해야 했다. 반란자 연맹이 테온에게 자식이 생겼다는 것을 알면 그때는 더욱더 과감하게 행동하려고 들 테니까.
또한 성지우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그녀의 생식 능력이 SSS+급이라는 것도 반드시 숨겨야 했다. SSS+급의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암컷이 생겼다는 소식이 퍼지면 그때는 온 우주가 힐턴 제국으로 몰려들어 그녀를 가지려고 할 테니까.
레스더를 태운 우주 전함은 재차 경고를 내렸음에도 아무런 반응도 없자 결국 우주 전함을 앞뒤로 배치해 통로를 완전히 막아버리는 작전을 세웠다.
에릭은 갑자기 앞쪽에 나타난 우주 전함 때문에 하마터면 부딪힐 뻔한 걸 미친 듯이 브레이크를 잡아 간신히 불상사는 피했다.
침실에 있는 성지우와 도우미는 불안정한 움직임 속에서 서로의 손을 꼭 맞잡았다.
“아가씨, 아무래도 침대 위에 누워있는 것이 더 낫겠어요. 이러다 발목이라도 삐끗하면 큰일 나요!”
“그러는 게 좋겠어요.”
배 속의 아이를 위해 성지우는 순순히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도우미는 그녀가 떨어지지 않게 옆에서 딱 지켜주었다.
에릭이 핸들을 돌려 옆으로 도망가려고 하자 이미 예상했다는 듯 이번에는 비행차 두 대가 양옆을 막아섰다.
“젠장!”
테온은 고작 암컷 하나 납치한 것에 경찰이 소형 우주 전함까지 보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그 덕에 성지우의 검사 결과지가 진짜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하게 들었다. 어쩌면 정말로 그의 아이일 수도 있었다.
테온은 그 생각에 이능력을 방출하며 우주 전함의 조종사를 쓰러트리려 했다.
하지만 그때 더 강한 이능력이 맞부딪쳐오며 천천히 그의 이능력을 밀어냈다.
‘레스더?’
그 힘의 주인이 레스더 볼찬이라는 것을 그는 단번에 알아챘다.
‘레스더가 왜 여기 있지? 아하, 저 암컷 때문에?’
“인질을 무사히 풀어준다고 약속하면 그때는 생채기 하나 없이 보내준다고 약속하지.”
레스더가 이능력으로 테온에게 말을 걸었다.
“고작 암컷 하나 데리러 오는데 대령이 직접 움직일 줄은 몰랐네? 내가 납치한 암컷이 상당히 가치가 있는 물건인가 봐?”
테온이 재밌는 걸 발견했다는 듯한 말투로 얘기하자 레스더의 목소리가 한층 가라앉았다.
“딱 1분 주지.”
테온은 사면초가인 현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다 이내 에릭에게 말했다.
“상승하거나 하강하면 저것들 손에서 벗어날 수 있나?”
에릭이 뭐라 답을 하려는데 이번에는 지면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경찰차 여러 대가 따라붙으며 총을 그들이 찬 비행차에 겨누고 있는 것이 보였다.
“도련님, 이대로 가다가는 전멸입니다. 차라리 차를 버리고 도망가는 게 낫겠습니다. 도망치는 순간에 기폭 장치를 가동하면 3초 뒤에 폭탄이 터질 거고 그렇게 되면 저희를 감싸고 있는 우주 전함도 데미지를 입을 겁니다.”
“좋아. 그렇게 해.”
테온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허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