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화
오후 다섯 시, 허이설은 물건을 정리하고 교실을 나왔다.
학교는 꽤 넓었고 과학원 쪽에는 작은 슈퍼가 하나 있었다. 슈퍼 앞을 지나던 그녀의 발걸음이 멈췄다.
회색빛 하늘에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슈퍼 입구에는 용제하가 느긋하게 서 있었고 그 옆에는 정태준이 있었다.
정태준의 손에는 생수 두 병이 들려 있었다.
허이설은 오후에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한 약속이 떠올랐다. 그녀는 정태준 쪽으로 걸어갔다.
시선이 그의 손에 들린 물병에 머물다가 고개를 들어 물었다.
“여기 물 사러 온 거야?”
그녀의 마음속에서 떠오른 어떤 추측이 다시 꿈틀거렸다.
정태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친구 보러 왔어. 겸사겸사 너랑 같이 밥 먹으러 가려고.”
허이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가자.”
옆에서 용제하는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서 있었다. 허이설은 그를 철저히 공기처럼 무시했다. 그러고는 정태준이 내민 물병을 받았다.
그 순간, 용제하가 지나가며 그녀의 어깨를 스쳤다.
허이설은 손이 휙 비워지자 고개를 숙였다. 그의 손에 들린 건 방금 자신이 들고 있던 물병이었다. 그녀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용제하.”
용제하는 이미 뚜껑을 따서 한 모금 마시며 곁눈으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
“아직 나한테 빚진 거 1,980원 남았잖아. 내 잔액에서 까.”
어이가 없어 허이설은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언제부터 용제하의 지갑 노릇을 하게 된 거지?’
허이설은 그가 그렇게 냉담하고 오만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걸 보면서 도무지 용제하가 어떻게 용은수와 친족 관계일 수 있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옆에 있던 정태준이 말했다.
“괜찮아, 내가 다시 사줄게.”
손을 저으며 허이설이 대답했다.
“됐어. 그냥 밥 먹으러 가자.”
식사 후 허이설은 바로 아파트로 돌아가 공부할 생각이었다. 도서관에서 밤늦게까지 있기에는 요즘 날씨가 너무 추웠다.
정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떠나기 전 용제하를 흘끗 바라봤다. 용제하와 시선이 마주쳤고 눈빛에는 알 수 없는 불쾌함이 번졌다.
허이설과 정태준이 멀어질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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