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다음 날, 주말을 맞은 김우연은 서점에 들러 여러 권의 참고서를 샀다.
그의 통장에는 아직 삼만 위안이 넘게 남아 있었다.
그 돈은 예전에 김씨 가문에 들어갔을 때 조서아가 보상이라며 준 돈이었다.
당시엔 쓸 일이 없었다.
학생이 돈을 어디에 쓰겠는가.
하지만 그 이후 김씨 가문에서 겪은 일들은 상상조차 못 할 정도였다.
중학교조차 김명헌과는 완전히 달랐다.
김우연은 평범한 중학교인 여원 중학교에 다녔고 김명헌은 김병훈 덕분에 일영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교사진이든, 학습 분위기든,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김명헌의 모든 학비와 생활비는 김씨 가문이 전액 부담했고 학교까지도 차로 데려다주고 데려왔다.
마치 휴양하듯 편안했다.
반면 김우연은 오직 혼자였다.
게다가 학비와 생활비 전부를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김씨 가문 사람들은 김우연이 최하층 출신이라 품행이 좋지 않을까 걱정했고 손에 돈을 쥐게 되면 문제를 일으켜 가문에 누를 끼칠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김우연에게 이미 돈이 있으니 더 줄 필요 없다며 아예 지원을 끊어버렸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김우연은 그 돈을 함부로 쓰지 않았다.
사치나 허영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물론, 김씨 가문이 그런 걸 신경 쓸 리는 없었다.
그들에겐 이미 끝난 일이었다.
책을 사고 돌아온 김우연은 일찍이 짐을 챙겼다.
내일 학교로 돌아갈 준비였다.
진아린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늘 미리 준비해 두는 습관이 있었다.
그날 저녁, 진경철과 석지향은 다시 한번 밥상을 차려 김우연을 위해 조촐한 송별 자리를 마련했다.
모두 즐겁게 식사하며 웃었다.
고등학교 생활은 일정이 빡빡했기에 특히 수능을 앞둔 시기에는 집에 올 시간조차 거의 없을 것이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각자 방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다.
방 안, 김우연은 창가에 서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깊은 밤, 별빛이 총총히 흩뿌려진 하늘.
그는 문득 생각했다.
저 수많은 별들 중 자신은 가장 작고 희미한 한 점일지 몰라도 그래도 자기만의 빛을 내고 싶다.
그때였다.
멀리서 한 줄기 빛이 번쩍였고 김우연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 한편, 한 대의 고급 스포츠카가 조용히 들어와 서 있었다.
낡은 동네에선 너무나 이질적인 존재였다.
곧 차의 전조등이 꺼졌는데 그건 분명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김우연은 이미 알아봤다.
그 번호판, 김씨 가문의 차량이었다.
‘이 시간에 김씨 가문 사람이 여길 왜 온 거지?’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그래, 아마 그 사람밖에 없겠지.’
그렇다면 이번엔 쉽게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생각하던 순간, 차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내렸다.
가녀린 몸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 하얗게 빛나는 피부는 어둠 속에서조차 눈부셨다.
김우연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럴 줄 알았어.’
그의 눈빛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여자는 다름 아닌 낮에 찾아왔던 김혜주였다.
그녀는 위층을 향해 손짓했다.
마치 잠깐 내려오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김우연은 조용히 돌아서서 천천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낮에 한 말이 아직도 이해가 안 돼요?”
그는 김혜주가 다가오자마자 냉랭하게 말했다.
“하지만 한 가지,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그게 너무 신경 쓰여서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어.”
“뭐가요? 김씨 가문에 있는 분이 저 때문에 잠을 설칠 일이 뭐가 있나요?”
차분한 김우연과는 달리 김혜주는 그를 비웃듯 입꼬리를 쓱 올리며 말했다.
“너 저번에 명헌이가 정말 양자라고 생각하냐고 물었잖아.”
“맞아요, 제가 그랬죠.”
김우연은 조금도 숨김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의 눈빛엔 묘한 장난기가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표정의 의미를 김혜주는 놓치지 않았다.
“너 정확히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거야?”
“말 그대로예요. 그 이상도 이하도 없어요.”
“하지만 너 진짜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아.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건데?”
김혜주의 시선이 점점 더 날카로워지더니 그녀는 김우연의 얼굴 근육 하나하나를 관찰했다.
표정, 눈동자, 숨결.
하지만 김우연의 얼굴에는 아무런 파동이 없었고 그저 냉소적인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조롱처럼 느껴졌기에 김혜주의 가슴이 욱신거렸다.
‘감히 나를 이런 눈빛으로 봐?’
김혜주는 이를 악물었다.
“너 도대체 무슨 뜻이야? 분명히 말해.”
“별 뜻 없어요.”
김우연은 담담히 대답했지만 김혜주는 점점 흥분했다.
“별 뜻이 없다고? 그럼 왜 그런 말을 한 거야? 아니면 네가 뭔가를 알고 있어서 그걸 빌미로 김씨 가문을 협박하려는 건가?”
그녀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났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가 보네요.”
김우연은 어깨를 으쓱였고 태연한 얼굴로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별 뜻 없다고 한 건 누나가 굳이 이렇게 찾아와서 묻는 것 자체가 별 의미 없다는 뜻이에요.”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설령 진실을 알아낸다 한들 누나가 바꿀 수 있는 게 있나요? 그건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그런데 왜 굳이 파헤치려는 거죠?”
그 말에 김혜주의 표정은 잔뜩 굳어버렸다.
“의미가 없다고? 알아도 바꿀 수 없어?”
그녀는 분노와 모욕감이 섞인 얼굴로 김우연을 째려봤다.
‘이 자식 도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감히 나를 이런 식으로 깔봐?’
“그만 돌려 말해. 너 도대체 뭘 원하는 거야? 조건이 뭔데? 네가 알고 있는 그 비밀... 당장 말해. 그 대신, 원하는 걸 들어줄게.”
김혜주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차가운 달빛 아래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긴 정적 끝에 김우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좋아요. 그렇게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싶다면 열어보시죠.”
그는 비웃듯 계속 말했다.
“저도 궁금하거든요. 누나가 그걸 알게 되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어쨌든 누나는 김씨 가문에서 제일 머리가 좋은 사람이니까요.”
김우연은 주머니에서 한 장의 쪽지를 꺼내 김혜주에게 건넸고 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걸 건네받았다.
그리고 숨이 멎은 듯한 느낌에 저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레졌고 얼굴이 창백해지고 손이 덜덜 떨렸다.
“이... 이게 뭐야?”
쪽지엔 또렷이 적혀 있었다.
[양자가 아닌 친자. 생모는 한빛 아파트 1-1 1101호에 거주.]
“너... 이걸 어떻게 알아낸 거야? 이게 진짜라는 근거는 뭔데?”
김혜주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지더니 끝내 말문이 막혀 결국 멍하니 김우연을 바라봤다.
그리고 지금, 김우연의 눈빛에는 조롱하는 듯한 기색이 잔뜩 드러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