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2화
경찰들은 군데군데 다 찢어진 그녀의 상의와 단추가 열린 채로 있는 그녀의 하의, 그리고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와 그녀의 쇄골 쪽에 남겨진 흔적을 보며 금세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그녀는 누가 봐도 성폭행을 당한 사람이었으니까.
안으로 들어온 두 명의 경찰은 소파에 앉은 채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보고는 잠시 멈칫했다.
그들이 흔히 봐왔던 비열한 얼굴의 성폭행범과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성폭행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그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집 안에서 벌어진 일이기도 하고 강제로 침입했다기에는 문을 따고 들어온 흔적이 아예 없었으니까.
“이 집의 집주인과는 무슨 사이십니까?”
경찰이 물었다.
“...”
서이건은 경찰 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계속해서 담배만 피워댔다. 이루나가 조금 전에 성폭행당했다며 울부짖었을 때도 그는 조금도 초조해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는 담배를 다 피운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셔츠 단추를 하나하나 잠그며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여자가 한 말, 다 사실입니다.”
여경은 남자의 순순한 인정에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와 함께 서로 가주셔야겠습니다.”
서이건은 별다른 해명 없이 순순히 남자 경찰을 따라나섰다. 현관문을 스쳐 지나갈 때 이루나 쪽을 힐끔 바라보기는 했지만 2초도 안 돼 바로 다시 시선을 거두어들였다.
여경은 이루나의 곁으로 다가와 형식적인 위로 몇 마디를 건넨 후 지금 바로 병원으로 가 검사를 받을 것을 요구했다. 증거를 남겨둬야 했으니까.
또한 검사를 마친 뒤에는 경찰서로 가 조사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이루나는 경찰서에서 나온 지 몇 시간도 안 돼 또다시 경찰서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며 모든 게 다 귀찮아졌다.
성폭행당했다고 한 건 홧김에 내뱉은 말일 뿐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잘한 것도 같았다. 이번 기회에 그와 더 확실하게 선을 그을 수 있을 테니까

링크를 복사하려면 클릭하세요
더 많은 재미있는 컨텐츠를 보려면 웹픽을 다운받으세요.
카메라로 스캔하거나 링크를 복사하여 모바일 브라우저에서 여세요.
카메라로 스캔하거나 링크를 복사하여 모바일 브라우저에서 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