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14화

다름 아닌 박희연과 이은서 모녀였다. 이루나는 흘끗 쳐다보더니 무덤덤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죠?” 박희연은 억대의 에르메스 가방을 손에 들고, 고상한 귀부인 같은 모습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이 못된 년아, 내가 왜 왔는지 진짜 모르겠어?” “죄송하지만 당신네 집안일에 관심도, 알고 싶은 마음도 없거든요? 할 말 있으면 바로 하세요. 빙빙 돌리지 말고, 저 바빠요.” 박희연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눌렀다. “은서가 그러는데, 너 이건이 개인 별장에 갔다며? 도대체 목적이 뭐야?” “유혹 말고 뭐 더 있겠어요? 예비 사위가 돈도 많고 얼굴도 잘생기고, 거의 상위 1%에 속하잖아요. 여자들이 안 달라붙는 게 이상하죠.” 박희연은 심호흡하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 “네년이 그동안 계속 시비 거는 거 그냥 철부지가 투정 부리는 줄로 여겼거든? 일찍이 어머니를 잃어서 안쓰러워 참아줬더니 내 딸의 미래까지 망치려 들어? 이번 기회에 내가 제대로 사람 만들어줄게.” 이미 세상을 떠난 엄마를 언급하자 그동안 어떤 말에도 흔들리지 않던 이루나의 마음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래요?” 이루나는 비아냥거리며 되받아쳤다. “나잇값이나 좀 하시죠? 20여 년 전에 여동생 남편 꼬셔서 와이프 자리까지 차지했잖아요. 저도 똑같이 ‘여동생’ 약혼자를 한 번 유혹해보려는데 나름 공평하지 않아요?” “이...!” 박희연은 화가 나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으나 정곡을 찔려 말을 잇지 못했다. 이때, 옆에 있던 이은서가 나서며 한마디 거들었다. “상스러운 말로 따지면 너만큼 잘하는 사람은 없지. 오늘 말싸움하려고 찾아온 게 아니니까 똑바로 들어. 아무리 반항하고 발버둥 쳐봤자 소용없어. 그건 밑바닥 세상에서나 통하는 거야. 서씨 가문 사람 건드릴 생각 하지 마. 괜히 선 넘었다가 너만 손해 볼 테니까 알아서 처신 잘해.” 이루나는 협박에도 콧방귀를 뀌었다. 이내 피식 웃으며 되받아쳤다. “은서야, 아직 본격적으로 뭘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겁먹고 찾아오면 어떡해? 나한테 엄포까지 놓는 거 보니 네 약혼자랑 감정에 자신이 없나 보네?” 이은서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헛소리 그만해! 분명히 말하는데 나 다음 달 18일에 이건 씨랑 약혼해. 서씨 가문에서 너 같은 악명 높은 여자가 얼쩡거리는 거 알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루나는 그녀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몸을 돌려 팔짱을 꼈다. “은서야, 제일 현명한 방법이 뭔지 알아? 네 남자를 잘 관리하는 거야. 정 불안하면 거시기 떼서 몸에 지니고 다니든가, 나한테 허세 부려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니? 잃을 게 없는 사람이 제일 무서운 법이거든.” “그게 무슨 말이야? 나랑 끝까지 해보겠다는 거니?” 화가 머리끝까지 난 박희연은 성큼성큼 다가가 팔을 번쩍 들어 뺨을 때리려 했다. 그런데 손이 닿기도 전에 이루나가 키우던 셰퍼드가 갑자기 달려들어 박희연의 옷을 물어뜯었다. “꺄악!” 박희연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강아지를 연신 때렸다. 옆에 있던 이은서도 깜짝 놀라 소리쳤지만 도우려다가 되레 물릴까 봐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 사이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강아지의 손톱이 박희연의 얼굴을 향하는 순간 이루나가 문득 입을 열었다. “건이! 이리 와.” 녀석은 고분고분 공격을 멈추고 이루나 곁으로 돌아왔다. 박희연은 강아지에게 물리진 않았지만 가슴 쪽 옷이 너덜너덜해졌다. 게다가 겁에 질린 나머지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엄마, 우리 먼저 가요. 이 개는 아주 난폭한 맹견이라서 위험해요.” 놀라긴 이은서도 매한가지였다. 이내 이루나와 강아지를 째려본 뒤 재빨리 박희연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두 골칫덩어리가 차를 몰고 떠나자 병원 안은 마침내 조용해졌다. 이루나는 곧바로 쪼그려 앉아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녀석은 함부로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주인에게 매우 충성스럽고 영리해서 개인 경호원 같은 존재였다. 평소에는 늘 같이 다니거나 병원에 두는 경우가 많았다. 그 후로 이루나는 박희연 모녀와의 다툼은 새까맣게 잊었다. 단순히 허세 부리는 정도로 여기고 병원 일로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일주일 뒤 어느 아침, 집에서 늦잠을 자고 있는데 지점장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큰일 났어요, 원장님!”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