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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무슨 일이죠?” 잠이 확 깬 이루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 병원에서 백신 맞은 강아지 다섯 마리가 죽었대요. 지금 손님들이 찾아와서 난리예요. 싸움까지 번졌는데... 얼른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이루나의 머릿속이 띵 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곧장 티셔츠와 청바지를 대충 걸치고는 허둥지둥 차를 몰고 시내에 있는 지점으로 향했다.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지점장과 통화를 이어가며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했다. 죽은 강아지들은 모두 최근 3일 이내 이루나의 동물병원에서 백신을 접종받았고, 다른 기저 질환이 없었기에 사인은 백신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지만 최대한 침착하려 애쓰며 머릿속으로 빠르게 해결책을 떠올렸다. 하지만 차에서 내려 병원에 들어서기도 전에 강아지 주인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누군가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또 누군가는 발로 걷어차거나 손으로 마구 때렸다. 어떤 사람은 악을 쓰며 욕설을 퍼붓고 울부짖기까지 했다. 모두가 제정신이 아닌 듯 날뛰며 이루나에게 분노를 쏟아내고 있었다. 몇몇 남자 직원이 격분한 손님들을 간신히 떼어놓은 덕분에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아니면 그 자리에서 몰매를 맞고 죽었을지도 모른다. 여직원 두 명이 급히 달려와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안으로 부축해 의자에 앉혔다. 두피는 욱신거렸고 입가에는 피가 배어 나왔다. 등과 허리, 배는 발로 걷어차여 통증이 밀려왔으며 온몸엔 손톱자국이 선명했다. 몰골은 말 그대로 처참했다. 하지만 침착하게 ‘치욕’을 참아내며 손님들의 분노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녀도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강아지를 잃는 슬픔이 자식을 떠나보낸 것과 다름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화를 아무리 크게 내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런 일이 벌어져서... 저도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너무나도 마음이 아픕니다.” 이루나는 고통을 참으며 책임자로서 모든 비난을 떠안고 말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반드시 진실을 밝히겠습니다. 그리고 보상 또한 충분히 해드리겠습니다.” “누가 보상 따위 필요하대요?” 고객 중 한 명이 절규하듯 외쳤다. “그깟 돈 몇 푼으로 우리가 잃은 소중한 아이를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차라리 죽어요! 강아지와 함께 묻어버리게.” 주요 고객 자체가 워낙 상류층이다 보니 견주들 또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부유한 여성들이다. 돈이 차고 넘치는 이들에게 그녀가 제시한 몇 푼 안 되는 보상금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신고합시다!” 또 다른 고객이 부추기며 말했다. “당장 경찰에 신고해요. 이딴 쓰레기 같은 가게는 폭삭 망하게 해야 해요.” 이루나는 최대한 자세를 낮추었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이번 비극은 제 관리 소홀에서 비롯되었으니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진상을 밝히기 위해 먼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거예요.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립니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놀라셨을 텐데 처리할 시간을 조금만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한껏 격앙된 여자들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욕설과 고함이 오간 후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관 몇 명이 병원에 도착해 이루나를 비롯해 관련된 몇몇 직원들을 경찰서로 데려가 진술서를 작성하게 했다. 이후 수사를 통해 사건의 진실은 곧 밝혀졌다. 지점에서 원래 사들인 백신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사용된 용량도 적절했다. 문제는 죽은 강아지 몇 마리에 악의적으로 주사된 건 한 간호사가 개인적으로 반입한 불량 백신이었다는 점이다. 간호사의 이름은 정은설, 사건 발생 이후 종적을 감추었다.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고 나중에 체포한다 해도 이미 돌이키기엔 늦었다. 고객들은 어떤 간호사가 강아지를 죽였는지에 관심이 없다. 단지 동물병원의 의료 시스템 자체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을 뿐, 이미 브랜드에 신뢰를 잃은 이상 다시는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이런 병원에 맡기면서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 이후 사태는 급속도로 악화했다. 막대한 손해배상 요구에 더해 여러 지점들 역시 타격을 입었다. 심지어 동물보호과의 명령에 따라 전면 폐쇄 및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동종 업계 경쟁자들은 이 사건을 기회 삼아 온라인에서 여론을 의도적으로 조작하며 그녀가 운영하는 모든 반려동물 관련 매장을 보이콧하자는 분위기를 유도했다. 그동안 믿고 따르던 충성 고객들마저 등을 돌려 단체 채팅방을 줄줄이 나가버렸다. 사업도 번창하고 이름도 꽤 날리던 브랜드는 그날을 기점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사건에 이루나는 단기간에 사태를 수습할 방법이 없어 며칠간 깊은 무력감에 빠졌다. 하지만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굳이 추측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만 이렇게까지 빨리 움직일 줄은 몰랐고, 단 한 방에 완전히 무너질 거라고는 더더욱 예상치 못했다. 결국, 분노에 휩싸여 이성을 잃은 순간 아무것도 신경 쓸 겨를이 없이 차를 몰아 곧장 이씨 저택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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