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딱히 아쉽다기보다는 단순히 궁금했을 뿐이다.
서이건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다음 달에 결혼해. 이 돈 가지고 다시는 나타나지 마.”
“결혼?”
이루나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오히려 가볍게 웃으며 농담까지 던졌다.
“유부남 아니었어? 애까지 있는 줄 알았는데, 어쨌든 축하해!”
남자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고, 그녀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머릿속으로 조금 전에 받은 20억 원이 떠오르자 이루나는 혹시라도 그가 마음이 바뀔까 봐 잽싸게 옷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다가가 다정하게 목을 껴안고는 잘생긴 얼굴에 입을 맞췄다.
“이 돈 잘 쓸게. 고마워, 내 생각을 해주는 건 역시 이건 씨밖에 없다니까.”
능글맞은 눈빛과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보자 서이건은 못마땅한 얼굴로 그녀를 거칠게 밀어냈다.
“얼른 가라. 기억해, 다시는 나타나지 마.”
그리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알았어!”
이루나는 휴대폰을 꺼내 그 자리에서 일말의 미련도 없이 연락처를 차단하고 카톡을 삭제했다.
“앞으로 연락하고 싶어도 못 할 거야. 안심해.”
말을 마치고 이불 속에서 브래지어를 꺼내 옷에 집어넣었다. 한참을 꼼지락거리다가 등을 돌린 채 그를 향해 말했다.
“나 좀 도와줘.”
서이건의 표정이 칠흑처럼 어두웠다. 그러나 화를 꾹 참고 익숙한 손길로 브래지어 후크를 채워주었다.
“먼저 갈게. 이따가 아는 남동생이랑 야식 먹기로 했거든. 서로 시간 낭비는 그만하자고.”
이루나는 그의 귀에 대고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속삭였다.
“안녕! 스폰서 아저씨.”
곧이어 심기 불편한 남자를 뒤로하고 가방을 챙겨 바람 같이 사라졌다.
그녀는 라이딩 장비를 착용하고 늘씬한 다리로 바이크에 올라탔다. 그리고 능숙하게 시동을 건 다음 쏜살같이 저택을 벗어났다.
어두컴컴한 밤,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속도를 점점 올렸다. 풀액셀을 밟고 아슬아슬한 커브를 곡예 라이딩을 하면서 여유롭게 차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귀청이 터질 듯한 엔진음은 도로 위 자동차 운전자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녀는 이런 극단적인 방식으로 스트레스 푸는 걸 온몸으로 즐겼다. 모든 근심과 걱정이 바람결에 흩어져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바이크 외에도 서핑, 스카이다이빙, 암벽등반, 레이싱 등 위험한 스포츠일수록 더 열광했다.
극한의 스릴을 좋아하는 편이며, 남녀 관계도 단순하고 원초적인 감정을 지향했다.
성격이 워낙 거침없고 자유분방한지라 그 흔한 사랑 타령에 휘둘린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한밤중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을 때 머릿속에 자꾸만 서이건의 얼굴이 떠올랐다. 함께했던 수많은 장소, 그리고 오늘 밤 마지막으로 마주한 장면을 떠올리자 쉽사리 잠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20억 원 때문에 너무 흥분해서 잠을 설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 후 한 달 동안, 이루나는 서이건을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익스트림 스포츠 동호회 회원들과 액티비티를 즐기거나 절친들과 소소한 모임을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물론 그녀에게도 본업은 있다.
반려동물에 관심이 많아 해외에서 몇 년간 동물 의학을 전공했고, 귀국하고 나서 동물병원을 창업했다.
업계에서도 타고난 재능 덕분에 병원 운영은 꽤 성공적이고, 이미 지점이 세 개나 생겼다.
어느 날 오후, 병원 일로 정신없이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막 정리하던 찰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발신자 이름을 본 순간 저도 모르게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전화를 받자마자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