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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오늘 네 이모 생신이야. 저녁에 집에 와서 밥 먹어.” 통화 상대는 다름 아닌 이루나의 생물학적 아버지, 이성태였다. 평소 같았으면 그의 전화는 물론, 본가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해결해야 할 중요한 일을 떠올리자 잠깐의 침묵 끝에 마지못해 대답했다. 자신의 복잡한 출생과 가정사에 대해 굳이 다른 사람에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 어렸을 적 이모와 바람 난 아버지 때문에 친엄마는 우울증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모가 새엄마로 집에 들어오자 그녀는 어느 순간 ‘불필요한’사람이 되어버렸다. 결국 10살이 되던 해 외국으로 보내졌고, 이성태는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외하고 아버지로서 관심은 1도 주지 않았다. 사실상 방임과 다름없었다.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한 지금은 하루라도 빨리 호적에서 자신의 이름을 파내고, 이씨 가문을 벗어나 생물학적 아버지와의 모든 인연을 끊는 것이 그녀의 최우선 과제였다.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오후 네다섯 시쯤 차를 몰아 집으로 향했다. 30분 후, 차는 고급 주택가에 들어섰고 한 유럽풍 저택 앞에 멈춰 섰다. 거실에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 누군가와 통화 중인 이성태가 보였다. 계모 박희연이 집사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느라 분주했다. 그녀를 발견하는 순간 얼굴에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늘 네 이모 생일이라 했잖아. 왜 빈손으로 왔어?” 이성태가 그녀를 꾸짖듯 말했다. 이루나는 본론부터 꺼냈다. “오늘 누구 생일 축하하러 온 거 아니에요. 호적에서 제 이름을 지울 거니까 그렇게 알고 계세요.” 이성태는 할 말을 잃었다. 박희연이 눈을 흘기며 이루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손에는 에르메스 한정판 가방을 들고 있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가의 명품으로 도배했다. “어쩐지 갑자기 분가하겠다는 말이 나오더라니.” 이내 콧방귀를 뀌며 말을 이어갔다. “어디서 후원해주는 남자라도 찾았어?” 이루나가 냉소를 지었다. “네, 요즘 나이 많은 남자 만나거든요. 아마 아버지보다 연상일걸요? 걸핏하면 몇십억씩 주는데 돈 쓸 곳이 없어서 걱정이에요.” “네 이년!” 이성태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녀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허구한 날 밖에 싸돌아다니기만 하고, 도대체 수치심이라는 게 있긴 한 거니? 내 체면을 다 깎아 먹으려고 작정했어?” “수치심이요?” 이루나는 무심한 태도로 맞받아쳤다. “죄송하지만 전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보호자는 있는데 배운 게 없거든요. 그래서 수치심이 뭔지 몰라요. 물론 아버지도 알았다면 당시 그런 파렴치한 짓은 하지도 않았겠죠?” “이...!” 이성태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 “내가 진짜 만만해 보이냐!” 이루나는 더는 말을 섞기 싫다는 듯 몸을 홱 돌렸다. “됐고, 허가받으러 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성을 바꾸고 나면 죽어도 연락 가는 일은 없을 거예요.” “우리 집안과 관계를 끊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아?” 박희연은 마치 안주인이라도 되는 듯 거만하게 나섰다. “네 아빠랑 그래도 널 20년 넘게 키웠는데 공짜로 쳐줄 순 없지. 그동안 너한테 들어간 돈, 원금에 이자까지 싹 다 갚든가, 아니면 내가 정해둔 혼사를 그냥 받아들이든가, 둘 중 하나 골라. 시집가면 어차피 가족관계를 등록해야 하니까 그 이후에는 성을 바꾸든 말든 맘대로 해.” 소위 ‘혼사’란 사실상 그녀를 어느 재벌가의 장애인 아들에게 시집보내 그 대가로 투자금을 얻으려는 속셈에 불과했다. 시커먼 본심을 드러낸 박희연을 향해 이루나는 냉소적으로 되받아쳤다. “설마 지금 나를 완전히 손아귀에 쥐고 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니죠? 동의 안 하면 법원에서 보죠, 뭐.” 이루나는 눈앞의 친엄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여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20여 년 전 그녀가 저지른 뻔뻔한 악행을 하나하나 들춰냈다. “그때가 되면 온 세상 사람이 알게 되겠죠. 잘 나가는 박희연 씨가 사실은 박씨 집안에 얹혀살던 양녀였고, 그 은혜도 모르고 여동생 남편이랑 눈 맞아서 결국엔 사모님 자리까지 꿰찼다는 거. 덕분에 양부모는 비참하게 죽고 박셀바이오까지 꿀꺽해서 겨우 지금의 지위에 이르렀죠. 이런 소문이 퍼지면 상류층에서 과연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을지 두고...” “그 입 다물어!” 정곡을 찔린 박희연은 얼굴이 사색이 되더니 팔을 번쩍 들어 뺨을 때리려 했다. 이루나는 재빠르게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고 오히려 따귀를 날렸다. “이...!” 박희연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가 감히 어른한테 손찌검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엄마!” 이때, 박희연의 딸 이은서가 집으로 들어왔다. 문을 열자마자 이 광경을 목격하곤 급히 달려와서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아요? 어디 다친 데 없어요?” “저 계집애가 내 뺨을 때렸어! 가만두지 않을 거야.” 화가 머리끝까지 난 박희연이 반격하려던 순간 현관 쪽에 나타난 사람을 보고는 우뚝 멈추었다. 이루나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고귀하고 싸늘한 분위기를 풍기는 한 남자가 거실로 들어섰다. 그가 나타나는 순간 마치 집안의 온도가 뚝 떨어진 듯했다.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이루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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