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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뻔뻔스러운 그녀의 모습에 서이건은 이도 저도 못 하고 팔을 붙잡은 채 노려보기만 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거친 행동까지 서슴지 않은 약혼자를 보며 이은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어느새 얼굴에 물을 뒤집어쓴 것도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하지만 서이건이 이루나의 뽀얀 팔을 붙잡고 있는 걸 발견하는 순간 짜증이 확 치밀었다. “이건 씨, 그냥 무시해요. 원래 정신이 좀 이상해서 막말은 물론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괜히 손 더럽히지 말고 얼른 보내요.” “그래, 이건아.” 박희연이 옆에서 부추겼다. “은서가 당하는 걸 두고 볼 순 없으니까 그랬겠지만 사실 네가 모르는 게 있어. 애를 기껏 외국으로 유학 보냈더니 별 이상한 버릇만 배워서 왔다니까. 담배, 술, 약까지 못 하는 게 없어. 자기 아버지도 포기할 정도인데 우리는 오죽하겠어? 단지 가족 평화를 위해 꾹 참고 있는 거야.” 서이건은 모녀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이루나의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고 눈부시도록 하얗고 가냘픈 팔을 여전히 붙잡고 놓지 않았다. 짜증이 스멀스멀 피어오른 이루나는 그의 손을 억지로 떼어내려 했지만 익숙하고도 남자다운 큰 손에 시선이 닿자 마음이 바뀌었다. 곧이어 손등을 살포시 감싸고 손가락으로 쓸어내린 다음 도발적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그녀를 보자 서이건은 불쾌한 나머지 못마땅한 얼굴로 손을 뿌리쳤다. “됐으니까 얼른 가.” 옆에 있던 이은서는 이루나가 서이건의 손을 만지는 순간 펄쩍 뛰면서 그제야 본색을 드러냈다. 이내 팔짱을 꼭 끼면서 과시하듯 말했다. “남자가 그렇게 좋으면 다른 데 가서 알아봐. 괜히 내 약혼자한테 눈독 들이지 말고. 언니 같은 사람이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분이 아니거든?” 이루나는 냉소를 지었다. 한때 그와 나눈 뜨겁고 격렬했던 밤들과 눈앞에서 ‘아내 바보’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겹치자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부자의 세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루나는 더 이상 실랑이를 벌이기 싫어 남자를 힐긋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려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등은 곧게 펴고, 최대한 쫓겨난 사람처럼 보이지 않도록 애를 썼다. 그리고 파란색 파나메라에 올라타 쾅 하고 굳게 차 문을 닫았다. 부드럽게 후진하고 방향을 틀더니 액셀을 힘껏 밟아 별장을 빠르게 벗어났다. 한 손으로 핸들을 잡은 채 멍하니 운전하면서도 머릿속에는 집에서 있었던 일이 반복 재생되었다. 특히 한 남자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고 자꾸 맴돌았다. ...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이미 밤 8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그녀는 평범한 주거 단지에 혼자 살고 있다. 25평 정도 되는 아파트를 전액 현금에 인테리어까지 합쳐 10억 원 정도에 거래했다. 물론 별장보다 넓고 호화롭진 않지만 이 큰 도시에서 진짜 자기 것이라 부를 수 있는 집이자 유일하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녀가 키우는 똑똑하고 위풍당당한 독일셰퍼드가 거실로 들어서는 순간 반갑게 달려 나와 꼬리를 흔들며 맞이했다. 한참을 놀아주다가 소파에 기대어 해외에 있는 절친과 수다를 떨며 십여 분 정도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슬슬 배가 고파져서 휴대폰으로 음식을 주문했다. 샤워를 마치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확인해보니 배달이 이미 도착했고, 요청한 대로 문 앞에 두고 갔다는 알림이 떠 있었다. 그녀는 별생각 없이 문을 열어 음식을 가져가려 했다. 하지만 손잡이를 돌리자마자 밖에서 누군가 문을 거칠게 밀어젖혔다. 곧이어 한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익숙하고도 싸늘한 기운이 그녀를 덮쳤고, 입을 열기도 전에 거친 손길에 이끌려 몸이 소파에 내동댕이쳐졌다. “이런 씨...”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날카롭고 음산한 눈빛을 마주한 순간 이를 악물고 외쳤다. “왜 또 우리 집까지 쫓아왔어? 아직 볼 일이 남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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