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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혹시 남자친구 있어?” 이루나는 멈칫하다가 코웃음을 지었다. “아니, 쭉 싱글이야.” “그럼 다행이고.” 태준은 안도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마음껏 즐길 수 있겠네, 가자.” 이런 다운힐은 산악자전거 중에서도 가장 짜릿한 종목으로 익스트림 스포츠를 통틀어 비교적 위험한 편에 속한다. 그래서 ‘잘 타면 흙먼지, 못 타면 깁스’이라는 말도 있다. 이루나는 17살 때부터 이 분야에 뛰어들었고, 초반에는 자주 넘어지고 뼈가 부러지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의 실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자전거를 끌고 산 정상에 있는 상급 코스 출발점에 도착했다. 그리고 무릎, 팔꿈치, 가슴, 목 보호대, 헬멧 등 모든 안전 장비를 꼼꼼히 착용했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 이루나는 양손으로 핸들을 꽉 잡고 페달을 힘껏 밟아 망설임 없이 산 아래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지형이 워낙 복잡하고 낙차도 큰 데다 울퉁불퉁한 숲길을 조금만 방심하면 머리를 부딪치기에 십상이다. 하지만 그녀는 마치 평지를 달리듯 쏜살같이 비탈길을 내려갔다. 장애물을 민첩하게 피하며 능숙하게 코너를 돌았다. 태준은 바로 뒤에서 비슷한 속도로 따라붙었고, 자전거 앞에 달아둔 카메라로 이루나의 멋진 뒷모습을 완벽하게 담아냈다. 험난한 숲길을 지나자 가파른 인공 석 계단이 이어졌다. 자전거는 계단을 따라 통통 튀며 빠르게 아래로 향했고 곧이어 좁다란 길이 나타났다. 한쪽은 절벽이며, 길 자체가 좁고 험해서 보통 사람이라면 걷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두 사람은 그런 곳을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자전거를 타고 질주했다. 이루나는 온몸으로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걸 느꼈고, 속도가 붙을수록 짜릿함은 배가됐다. 귓가에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고 며칠째 쌓였던 감정의 찌꺼기들이 거침없는 질주 속에서 하나둘씩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자전거와 온전히 하나가 되어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모든 잡념을 떨쳐냈다. 마치 세상 만물과 무관한 듯 발아래 이어지는 길만이 그녀의 전부였다. 그러고 나서 가장 도전적인 구간까지 통과했고, 마지막으로 멋진 공중회전을 선보인 후 무사히 결승점에 도달했다. 자전거에서 내린 두 사람은 숨을 헐떡였다. 땀에 흠뻑 젖어 있었지만 이루 형언하기 힘든 짜릿한 쾌감이 온몸으로 퍼졌다. 태준은 비서가 미리 준비해둔 생수를 가져와 직접 뚜껑을 열어 이루나에게 건넸다. “자, 여기! 앞으로 우리 고수님이랑 팀 먹어야겠는데?” 그녀는 생수를 받아 들고 고개를 젖힌 채 벌컥벌컥 마셨다. “이 자전거 진짜 대박이네! 내구성도 끝내주고, 여태껏 타본 것 중에서 제일 좋아.” “그래? 앞으로 이 브랜드 새 모델 나올 때마다 다 구해줄게. 장비도 전부 내가 책임진다!” 이루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너 혹시 말로만 듣던 재벌 집 철부지 아들 아니야?” 태준은 묵묵부답했다. 순간, 넋을 잃은 채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운동을 마친 지 얼마 안 되어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뽀얀 피부는 은은한 핑크빛이 감돌아 생기가 넘쳤다. 거기에 영혼을 사로잡는 듯한 눈동자까지 더해져 온몸으로 활기찬 분위기를 내뿜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여성스러운 매력과 남성적인 기개가 동시에 느껴지는 얼굴은 그의 주변에 있던 병든 닭처럼 여리기만 한 애교쟁이 성형미인들을 단숨에 압살했다. 무심코 고개를 든 이루나는 태준의 뜨거운 시선을 맞닥뜨렸다. 괜스레 민망한 느낌에 얼른 화제를 돌렸다. “한 바퀴 더 탈래?” 하지만 태준은 다른 계획을 세웠다. “이 근처에 내가 사는 별장까지 자전거로 가면 한 15km 되거든? 거기 수영장도 있으니까 도착하면 바로 수영하는 건 어때?” 이루나는 흔쾌히 대답했다. “좋아.” 한여름에 땀을 흠뻑 흘리고 난 뒤에 수영장에 뛰어드는 상상만 해도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두 사람은 산악자전거를 타고 교외의 도로에 들어섰다. 평지 위에서 신나게 엎치락뒤치락하며 페달을 밟는 발에서 연기가 날 정도로 속도를 냈다. 심지어 달리는 차보다 더 빨랐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던 중 이루나는 저 멀리 우뚝 솟은 현대식 고급 주택을 발견했다. “평소에 여기서 살아?” 이루나는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아니.” 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얘기한다는 게 깜빡했네. 여기 사실 우리 삼촌 집이야. 나도 가끔 여기서 지내거든.” “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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