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5장

잠시 후, 주경민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의 눈동자는 붉게 충혈돼 있었는데 그 안에는 서늘하고 날카로운 살기가 가득 깃들어 있었다. 그는 낮고 냉랭한 목소리로 추영준에게 지시했다. “나 대신 뭐 좀 처리해 줘...” 그동안 주씨 저택에는 어르신이 계속 머물고 있었다. 어르신은 장미숙과 강유리 모녀를 눈엣가시처럼 여겨 좀처럼 곱게 보지 않았고 특히 강유리를 더욱 혐오했다. 하지만 강유리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비록 속으로는 늙은 여편네가 빨리 저세상으로 꺼졌으면 좋겠다며 저주를 퍼부었지만 그녀는 어르신이 주경민의 할머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겉으로는 억지로 웃으며 얌전한 척 비위를 맞춰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강유리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냈다. 특히 주경민이 아직도 아무런 소식조차 없다는 사실이 그녀를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예전 주성호가 일주일 안에 반드시 주경민을 해성시로 돌아오게 만들겠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약속은 공허한 메아리로 남았고 지금까지도 주경민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결국 강유리는 인내심을 잃었다. 게다가 요즘 들어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마음을 옥죄고 있었다. 모든 상황이 마치 그녀의 손아귀를 벗어나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는 듯했고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최악의 시나리오가 맴돌았다. 만약 주경민이 돌아와서 파혼하겠다고 하면? 힘들게 쌓아 올린 이 삶. 그토록 갈망하던 주씨 가문의 약혼녀라는 지위를 이제야 손에 넣었는데 그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는다면? 해성시에서도, 주씨 가문에서도 더 이상 발붙일 곳조차 없을 것이고 과거 그녀를 비웃고 조롱하던 시선들이 다시금 자신을 향할 게 뻔했다. 그리고 만약 주경민이 심자영과 결혼이라도 한다면... 설령 주성호가 그녀와 장미숙을 감싸며 주씨 가문에서 쫓아내지 않는다 해도 결국 그들의 눈치를 보며 하루하루 버텨야만 할 것이다. ‘심자영과 추영자 그 두 년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강유리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모든 상황은 한 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