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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다시 눈을 떴을 때 임유라는 병원에 있었다. 그녀의 침대 앞에서 지키고 있던 육시훈은 그녀가 깨어나자 불안한 마음을 드디어 내려놓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목소리 쉰 채로 낮게 말했다. “유라야, 깼구나. 미안해. 그때 내가 사람을 잘못 잡아서 네가 계단에서 떨어지게 됐어. 아파? 오빠를 때려도 돼...” 그는 정말로 미안해하는 듯 보였지만 임유라는 알고 있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거짓이라는 것을. ‘연기를 참 잘하는구나.’ 분명 소은하를 좋아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본능적으로 거리를 두는 그였다. 매일 밤낮으로 그녀를 역겹다고 욕하면서도 사랑하는 척 연기를 해왔다. 임유라는 가슴이 꽉 막힌 듯해 몸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견딜 수 없었던 그녀는 간호사가 검사하러 가자고 하자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검사를 마치고 나서야 그녀의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병실로 돌아와 문을 열자 육시훈이 그녀의 휴대폰을 들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저씨요? 어떤 아저씨죠? 잘못 거셨어요. 유라는 해외 갈 일이 없...” 그 말을 듣자 임유라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는 휠체어를 재빨리 밀고 들어가 휴대폰을 낚아챈 후 급히 통화를 끊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육시훈의 얼굴에 서서히 의심이 스며들었다. “유라야, 이 사람이랑 아는 사이야?” 임유라는 눈을 내리깔며 애써 아무 일도 없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니... 모르는 번호예요. 아마도 보이스피싱일 거예요.” 확실히 그 번호에는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지 않은, 국제전화로 표시되어 있었다. 육시훈은 이에 의심을 접고 그녀를 도와 침대에 눕혔다. 그는 차분하게 진단서를 확인하고 의사와 상의하며 마치 정말로 그녀의 상태를 걱정하는 듯 보였다. 그의 주의가 분산된 틈을 타 임유라는 서서히 사광혁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가 일을 마칠 때쯤 그녀는 딱 맞춰 메시지 기록을 삭제하고 휴대폰을 껐다. 육시훈은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붉게 충혈된 눈가를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의사의 말씀으론 별일 없다네. 내일 퇴원해도 된대." 그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요즘 자주 우울해 보이던데 퇴원하면 오빠가 데리고 나가서 산책이나 시켜줄까?” 그녀가 대답하지 않자 육시훈은 묵인으로 받아들였다. 퇴원하는 날, 그는 차를 몰고 그녀를 경인시에서 가장 큰 극장으로 데려갔다. 문 앞에 세워진 포스터를 본 임유라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국립무용단 수석 소은하, 화려하게 데뷔] “유라야, 넌 춤을 가장 사랑하잖아? 마침 은하가 최근에 공연이 있어서 너를 데리고 와서 보여주고 싶었어. 좋지?” 임유라는 그의 눈빛에 재빨리 스쳐 지나가는 쾌감을 정확히 포착했다. 그녀는 그가 일부러 그녀를 데리고 와서 자극하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두 다리를 못 쓰게 된 무용가를 객석에 앉혀 놓고, 자신의 자리를 대신한 사람이 무대 위에서 빛나는 모습을 지켜보게 하는 것은 확실히 복수적인 행동이었다. 임유라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휠체어를 잡은 양손은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주어 솟아오르는 복잡한 감정들을 겨우 삼켰다. 입장하자 커튼이 서서히 열리며 소은하가 은백색의 무용복을 입고 우아하게 등장했다. 그녀의 동작 하나, 턴 한 번, 무대 이동 하나까지 임유라에게는 익숙하기 그지없었다. 이 춤은 그녀가 천 번 넘게 연습해 움직임까지 꿰뚫고 있을 정도인데 지금은 그저 관객석에서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가슴 한구석이 무엇인가에 찔린 듯 쓰라렸고, 아픔이 목까지 차올랐다. 시선을 돌리려는 순간 육시훈이 보였는데 그는 완전히 그 춤에 빠져든 상태였다. 눈에는 감추지도 않은 감탄과 애정이 가득했다. 예전에 임유라의 공연을 볼 때는 그런 눈빛을 단 한 번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는 열정적인 박수를 보내며 늘 똑같은 칭찬을 늘어놓곤 했다. 마치 진심으로 그녀를 위해 기쁜 듯이 말이다. 임유라는 그게 그의 진심인 줄 알았는데 이제야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것 아닌 것, 진심과 가식이 얼마나 명확하게 구분되는지 말이다. 단 한 번의 눈빛만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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