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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강희진이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누구요?” 안에서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문이 열렸다. “무슨 일로...” 사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안에서 부인이 달려 나왔다. “어머나, 선비님은 어쩌다 이렇게 되신 겁니까?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선우진의 몰골을 본 남녀는 놀라 허둥지둥 두 사람을 안으로 들였다. 강희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미 맥을 못 추는 선우진을 보고는 문턱을 넘었다. 방은 크지 않았고 귀한 살림살이는 눈에 띄지 않았지만 정갈하고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부엌에선 밥 짓는 냄새가 은근히 풍겨 나왔다.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이 강희진은 선우진을 조심스레 부축해 침상에 눕혔다. “서방님, 어서 장 의원 좀 모셔 오세요.” 부인이 서둘러 사내에게 일렀다. “알겠소!” 사내는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발길을 돌렸다. “잠깐만요!” 강희진이 놀란 듯 얼른 그를 불러 세웠다. 겉으론 인상도 좋고 인심도 넉넉해 보이지만 사람 속은 함부로 단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선우진은 아무에게나 정체를 드러낼 수 없는 인물이었고 그를 아는 이가 적을수록 그만큼 위험도 덜했다. 강희진은 최대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해도 저물었으니 굳이 의원을 부르러 가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따뜻한 물이랑 깨끗한 천, 혹 금창약이 있으시다면 그것으로도 족합니다.” “알겠습니다.”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방에서 나갔다. “두 분은 혹시 경성에서 오셨소?” 사내는 장롱을 열어 위 칸에서 두툼한 이불을 꺼내며 물었다. 그러자 강희진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속에서 경계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데가 현무산이라, 경성 사람들이 사냥을 자주 오는 곳이오. 행색이 남다르시니, 혹 길 잃고 흘러드신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오.” 사내는 강희진의 미묘한 기색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태연하게 제 할 말만 늘어놓았다. “아, 나는 노만복이라 하오. 방금 그 여인은 내 처 방혜란이오.” 노만복은 이불을 강희진에게 건넸다. “고맙습니다.” 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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