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6화
밤이 깊었건만 강희진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려하게 치장한 채로 나타났다. 연분홍 화장에 고운 옷차림이 어두운 밤 속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기분은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했다. 그녀는 가장 환히 불빛이 비치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감히 본궁을 건드리다니!”
막 문 앞에 다다랐을 때 안에서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강희진의 눈빛이 순간 싸늘하게 식으며 입가에 얕은 조소가 스쳐 갔다.
그녀는 주저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강원주? 네가 여기 웬일이냐?”
숙빈이 그녀를 알아보고는 원래도 찌푸린 얼굴을 더욱 일그러뜨렸다.
강희진은 바로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닫힌 문 너머를 흘깃 바라보았다.
“민빈마마, 폐하께서는 오늘 국사를 살피시느라 아무도 뵙지 않겠다고 분부하셨습니다. 부디 먼저 궁으로 돌아가 주시지요.”
정허운이 앞으로 나서며 조용히 일렀다.
숙빈은 참지 못하고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허, 이리도 곱게 단장하고도 폐하 얼굴 한번 뵙지 못하고 돌아가게 생겼구나.”
그녀는 강희진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으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노골적인 멸시가 눈빛에 가득했다.
강희진은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몸을 비켜섰다.
“듣자 하니 숙빈께서도 이 자리에서 발이 묶인 모양이더군요.”
뜻밖의 맞받아침에 숙빈은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다 이내 얼굴에 독이 서렸다.
“본궁은 폐하께서 바쁘신 줄 알고 물러나 기다리는 것이다. 너처럼 더러운 마음 품고 밤중에 기어들어 오는 요망한 계집이 아니다! 이런 차림으로 찾아오는 것부터가 품위라곤 없구나!”
“우리 양씨 가문 사람은 그런 저열한 짓은 하지 않는다.”
숙빈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소매를 정리하며 도도하게 말했다.
강희진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웃는 거냐?”
숙빈이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숙빈의 말씀이 참으로 당당하셔서 말입니다. 하마터면 제가 조금 전에 들은 말들이 전부 제 착각인 줄 알 뻔했네요. 궁녀들이 마마를 달래며 폐하께서 뵈지 않아 속상해하지 마시라고 애쓰는 모습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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