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9화
그토록 오랜 세월 으스대며 기세등등하던 강상목, 이제 그 콧대를 꺾을 때가 되었다.
그 위선 가득한 얼굴을 떠올리자 강희진은 속이 뒤집혀 견딜 수가 없었다. 구역질이 올라왔다.
아마도 숙빈이 나서니 강원주로서도 질 수 없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강희진은 전날 밤, 선우진의 곁에 머무르느라 자정이 한참 지나서야 돌아왔다. 이제 막 눈을 붙였을 뿐인데 또다시 강제로 끌려나와 폐하를 모시러 가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달리 방도가 없어 강희진은 몸을 일으켜 대강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궁을 나섰다.
걸음을 옮기면서도 정신은 아득했고 다리는 힘이 풀려 솜 바닥을 밟는 듯 휘청거렸다.
“죽겠네, 너무 졸려.”
하품을 길게 내뱉던 강희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차라리 잠깐이라도 폐하께 아뢰고 그곳에서 눈 좀 붙이시는 게 어떨까요?”
초월이 그녀의 초췌한 몰골을 보고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소곤거렸다.
“폐하라고 해서 강원주보다 나을 게 뭐가 있겠니?”
강희진은 성이 차지 않아 눈을 하늘로 치뜨며 말했다.
잠자리만 되면 선우진이 얼마나 지독한 사람인지, 그녀는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난 오늘 그쪽으로 가지 않을 거야.”
강희진은 눈썹을 들어 올리며 교활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
초월이 어리둥절해했다.
“인시(寅時)에 돌아왔더니 진시(辰時)에 또 나가라고? 내가 뭐 맷돌 끄는 당나귀냐? 흥, 낮도 밤도 없이 굴릴 생각인가.”
강희진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 난청각에서 잠깐 쉬었다 가자꾸나.”
초월이 말을 붙일 틈도 없이 강희진은 성큼성큼 난청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선우진은 후궁이 많지 않아 본디부터 후궁 전각들이 텅 비어 있었다. 더구나 숙의 남씨가 죽고 난 뒤, 난청각은 자연스레 공실이 되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머물렀던 터라 다른 빈 전각들에 비해 생기도 남아 있었다.
게다가 주인이 죽은 터라 궁인들조차 이곳을 꺼려 피해 다니는 바람에 한적하고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강희진은 속으로 싱긋 웃으며 이보다 완벽한 낮잠 장소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에 한껏 들떠 있

링크를 복사하려면 클릭하세요
더 많은 재미있는 컨텐츠를 보려면 웹픽을 다운받으세요.
카메라로 스캔하거나 링크를 복사하여 모바일 브라우저에서 여세요.
카메라로 스캔하거나 링크를 복사하여 모바일 브라우저에서 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