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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24화

정신없이 바쁜 하루가 지나갔고, 밤이 되자 유정은 회사 건물 아래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오자, 밤 9시였다. 유정이 머무는 아파트는 크지 않았다. 대략 50평 정도로, 방 두 개에 서재 하나가 있는 구조였다. 더군다나 유정은 여기에서 잠시 머무는 중이라 조백림의 서재를 차지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거실과 베란다 사이에 임시로 책상과 의자를 두고 퇴근 후 업무를 보는 공간으로 삼았다. 샤워를 마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유정은 노트북 앞에 앉아 메일과 문서를 확인했다. “이렇게 바쁜데, 집에 와서도 일해?” 맑고 차분한 남자 목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지자, 유정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낯익은 잘생긴 얼굴을 보고 나서야, 아침에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유정은 정신없이 바빠서 백림과 통화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고, 유정은 안경을 벗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대학 동기가 문서 번역 좀 도와달라고 해서.” 백림은 냉장고를 열었는데, 안에는 온갖 칵테일 병들이 화려한 색깔로 정리돼 있었고, 보기에도 꽤 예뻤다. 그는 살짝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생수 하나를 꺼냈다. 유정은 작은 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손에 들고 나왔다. 그러고는 지퍼백 하나를 책상 위에 올려두며 말했다. “네 회사에 전자기술 전담팀 있잖아. 이 안에 든 게 뭔지 좀 알아봐 줄 수 있을까?” 백림이 다가와 그것을 들어 살펴보며 물었다. “어디서 찾았어?” 유정이는 솔직하게 말했다. “우리 집 강아지집에서.” 백림은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유정이는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사실 대충 짐작은 가. 그래도 혹시나 해서, 확인도 해보고. 가능하면 자세한 정보도 얻고 싶었어.” 백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가져가서 확인해 볼게. 내일 연락해 줄게.” 그 말에 유정은 고맙다는 듯 말했다. “고마워.” 백림은 차 키를 집으며 말했다. “그럼 나 먼저 간다.” 유정은 그를 문 앞까지 배웅했다. 그때 백림의 휴대폰이 울렸고, 전화를 받았다. 유정은 그 뒤에 서 있다가, 전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를 희미하게 들었다. [지금 어디 계세요? 아까 9시에 강성 도착하신다고 하셨잖아요. 계약할 회사 사장님이랑 담당자들 다 와 계세요. 사장님의 사인만 기다린다고요!] 그러나 다급한 상대방과는 달리 백림은 태연하게 말했다. “뭘 그렇게 급하게 굴어요. 좀 기다리라고 해요.” 백림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급히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고, 곧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그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유정은 현관 앞에 서서 잠시 마음이 따뜻해졌다. 백림은 오후 비행기를 타고 강성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이곳으로 왔다는 뜻이었다. 아마 저녁도 못 먹었을 테고, 지금도 고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자신을 위해 힘을 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 차가운 가을밤에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일이었다. 다음 날 점심시간. 유정은 식사를 하던 중 백림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가 준 물건 분석했어. 초음파 진동 장치인데, 안에 레이더 시스템이 탑재돼 있더라.] [차랑 연결돼 있어서, 네 차가 설정된 범위에 들어오면 자동으로 전자파를 쏴서 동물의 신경을 자극하는 구조야.] 백림의 말에 유정은 핸드폰을 꼭 쥐었다. 점심 무렵 뙤약볕이 쨍쨍한데도 손바닥은 차갑게 식어갔다. 확실한 사실을 듣고 나자 유정은 그동안 왜 자기가 집에 들어올 때마다 개들이 왜 그렇게 미친 듯이 짖었는지 알 것 같았다. 차를 마당 밖에 세워도, 집 차고에 넣어도, 발소리를 일부러 죽여도 소용없던 이유. 이 모든 게 그런 기술 때문이었다니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유정이 아무 말도 없자 백림이 물었다. “누가 설치했을 것 같아?” 유정은 거의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유신희지.” 유정의 부모님이 그럴 리 없고, 할아버지, 할머니, 신희 부모님 모두 신희를 그렇게 아끼는데, 신희의 몸 상태를 이용해 이런 짓을 할 이유가 없었다. 신희의 남동생, 그러니까 사촌 남동생은 지금 외국에 있으니 이 모든 걸 꾸민 건 결국 신희 자신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목적은 뭘까? 나를 가족에게 미움을 받게 하려고? 아니면 동정을 받기 위해서?” 이러한 생각이 들자 유정은 신희가 너무 무섭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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