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33화
수요일 저녁, 유정은 바깥 일정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조백림을 닮은 남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백림의 옆에는 화사한 분위기의 여자가 있었고, 유정은 아주 센스 있게 인사도 하지 않고 조용히 지나쳤다. 괜히 남의 분위기 망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금세 토요일이 되었다.
백림은 전날 늦게까지 회식 자리에 있다가 아예 호텔에서 자고 아침 9시가 넘어서야 깼다.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도로는 심하게 막힌 데다가 돌아서 돌아가는데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래서 백림이 집에 도착한 건 거의 정오 무렵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꽃다발을 든 채 집에 들어서자, 거실 소파에 앉아 전화를 받고 있는 주윤숙이 보였다.
주윤숙은 조용한 말투로 누군가의 생일 축하 인사에 고맙다고 대답하고 있었다.
또한 주윤숙은 여사는 원래 소란스러운 걸 좋아하지 않았다. 생일도 매년 소박하게 맛있는 미역국 한 그릇으로 넘기곤 했다.
그리고 예전엔 직접 백림과 자신을 위해 미역국을 끓였지만, 몇 해 전부터는 백림이 직접 어머니를 위해 미역국을 만들어왔다.
백림은 조용히 입 모양으로 생일 축하한다고 말한 뒤 꽃을 주윤숙 옆에 내려놓고, 소매를 걷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그때 문득, 유정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약속을 잊은 건 아닌지, 전화해야 하는지 고민하던 찰나, 부엌 안쪽에서 뭔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유정의 뒷모습이 보였다.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유정은 손에 든 케이크를 다듬고 있었고, 백림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부엌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 온 거야?”
백림이 다가가며 묻자, 유정은 깜짝 놀란 듯 고개를 돌렸다. 민낯에 묶은 머리, 살짝 올라간 눈썹과 윤기 있는 눈동자, 새빨간 입술 위엔 생크림이 묻어 있었고, 콧등에도 한 점 흰 자국이 있었다.
평소보다 한층 순수하고 익살스러운 모습인 유정은 시선을 돌려 다시 케이크를 다듬으며 말했다.
“적어도 너보다는 빨리 왔지.”
그러나 속으로는, 자기 엄마 생일인데 이렇게 늦게 오는 거 보면 어젯밤 꽤 즐거웠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도우미는 이미 재료를 준비해 두고 조용히 자리를 비운 상태라, 남겨진 부엌엔 두 사람뿐이었다.
곧 백림도 소매를 걷고 앞치마를 둘렀다. 유정이 만든 케이크는 이미 형태가 나왔고, 현재는 마무리 장식을 하는 중이었다.
백림은 곁에서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제법인데? 너는 팔방미인 같아.”
백림의 칭찬에 유정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대답했다.
“그럼, 당연하지.”
유정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사실은 주윤숙에게 직접 생일 케이크를 만들어주고 싶어 일부러 속성 제과 수업까지 들었다는 걸.
그래서 일주일 내내 늦게 귀가했던 이유도 매일 밤 두 시간을 수업에 투자했기 때문이었다.
감사의 표현이라면, 그만한 정성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유정은 주윤숙을 진심으로 좋아했고, 이 일 또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일이었다.
백림은 유정의 자랑스러운 표정을 보며 미소를 지었고, 그제야 조용히 미역국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유정은 포니테일 머리를 하고, 진지한 얼굴로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햇빛이 그녀의 오뚝한 콧날을 따라 내려오며 또렷한 옆선을 만들어냈다.
한 가닥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자꾸 눈에 걸렸지만, 손에 생크림이 묻어 있어서 손등으로 몇 번 쓸어도 다시 흘러내리자, 그녀의 귀 끝이 점점 빨개졌다.
백림은 잠시 유정을 바라보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들어 유정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백림의 손끝이 유정이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낯선 온기가 느껴진 유정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이에 백림은 싱긋 웃으며, 조리대에 기대어 유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호, 부끄러운가 보네?”
유정은 백림을 흘겨보더니 눈을 반짝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리고 손에 묻은 생크림을 백림의 얼굴에 쓱 문질렀다.
“부끄럽긴 개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