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39화
백림은 고개를 돌려 유정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나 잠깐 다녀올게. 편하게 있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정 쪽으로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옆 테이블에서 유정을 놀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야, 너 설마 연락처 하나도 못 받은 거야?”
“유정아, 이렇게 소심한 건 너답지 않아!”
유정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벌칙 받아들이면 되잖아. 마실 술, 너희가 정해. 딴말 안 할게!”
그때 백림이 다가와, 그녀 옆에 털썩 앉았다. 손을 뻗어 유정의 손에 들린 술을 빼앗아 가며, 흐릿한 조명 아래에서도 도드라지는 잘생긴 얼굴이 더욱 화려하고 도발적으로 빛났다.
“아가씨, 내 연락처 필요해요?”
유정은 술기운이 확 올라오며, 눈앞의 백림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소강희와 전소은도 순간 굳어버렸고, 눈을 반짝이며 그 잘생긴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옆모습만 봤을 땐 이미 최고였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실물은 차원이 달랐다.
특히 그 눈매.
적당한 눈썹 간격, 길게 빠진 눈꼬리, 깊은 동공에서 반짝이는 눈빛, 한 번만 봐도 빠져들 것 같았다.
백림은 유정의 핸드폰을 집어 들더니 직접 자기 번호를 저장했다.
“내 개인 번호예요. 24시간 켜져 있으니까, 언제든지 연락해도 돼요.”
강희는 저도 모르게 낮게 탄성을 질렀고, 순간적으로 민망함을 느낀 듯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그리고 소은과 얼른 다른 얘기를 하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백림은 휴대폰을 돌려주며 유정에게 몸을 기울였다. 이윽고 낮은 목소리로 유정의 귀에 속삭였다.
“날 보자마자 도망가더라? 왜 그랬어?”
유정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왜 도망갔지? 숨길 일이 있어도 그건 나답지 않잖아.’
백림은 맞은편 강희와 소은을 바라보며 흥미롭게 물었다.
“진실게임 하고 있었어요? 나도 껴도 돼요?”
강희는 갑작스럽게 끼어든 백림 때문에 긴장했다. 평소엔 아무 말도 잘하고 겁 없는 척했지만, 막상 실제로 잘생긴 남자가 다가오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유정은 백림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그쪽 여자친구가 아직 기다리고 있던데요. 우리랑 이런 게임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네요.”
조명을 등지고 선 백림은 묘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그림자와 빛이 반쯤 얼굴을 갈랐고, 백림의 눈은 오직 유정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깊고 강렬했다.
이에 백림은 얕게 웃으며, 농담 같기도 하고 진심 같기도 한 말투로 말했다.
“여자친구 아니야. 그냥 아는 사람이야. 우연히 만난 거죠.”
‘그게 무슨 차이가 있나?’
유정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무슨 사이든 간에, 그런 사람을 두고 여기서 노는 건 예의가 아니죠.”
백림은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럼 같이 부를까요?”
백림의 말에 유정은 할 말을 잃었다.
‘다른 여자를 불러서 자기 약혼녀랑 같이 놀자고?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
‘다른 사람들이 몰라도, 적어도 창피하지는 않아야지!’
유정의 표정이 확 굳어지자, 백림은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 둘이서만 노는 게 더 낫겠죠?”
유정은 당장 백림에게 어퍼컷을 날리고 싶었다. 오른손 훅 한번 치고, 왼손으로 훅 한번 치고 싶었다.
이때 소은이 급히 끼어들며 말했다.
“좋죠! 다 같이 해요!”
백림은 직원에게 주사위 게임용 컵을 요청했고, 모두 함께 주사위 게임을 시작했다.
유정은 백림이 주사위 게임에 엄청 능한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음속으론 백림이 또 여자들 상대로 치사하게 굴겠다고 생각했지만, 첫판부터 백림이 졌다.
이에 백림은 군말 없이 벌주를 받아 마셨고, 강희와 소은은 흥분해서 거의 춤이라도 출 기세였으며,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그 뒤로도 한 시간 넘게 게임이 이어졌고, 강희와 소은은 여러 번 졌지만, 백림은 절대 심한 벌칙을 시키지 않았다.
백림도 가끔은 일부러 지는 것처럼 보였고, 벌주나 노래 부르기 같은 벌칙도 전혀 피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유정은 단 한 번도 지지 않았기에, 소은은 놀라며 말했다.
“오늘 유정이 왜 이렇게 운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