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41화
유정은 눈을 반쯤 뜨고 조백림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혹시 독심술 할 줄 알아?”
그러자 백림은 유정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없어. 하지만 신경 쓰이는 사람의 감정은, 평소와 다르면 바로 느껴지지.”
어둑한 밤빛 속, 유정의 눈동자에 희미한 물결이 일렁였다. 이 나쁜 백림이 또 은근슬쩍 들이대는 거였다.
유정은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술기운이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진짜 감동적이네.”
백림은 싱긋 웃었는데, 그 미소는 눈꼬리까지 번지며 요염하고도 매혹적인 분위기를 뿜었다.
그는 일어나 부엌으로 가더니, 잠시 후 물 한 병을 가지고 나와 뚜껑을 열고 유정 앞에 두었다.
“집에 해장할 만한 게 없네. 물이라도 좀 마셔.”
유정은 몸을 일으켜 앉더니 물을 들이켰다. 급하게 마신 탓에 물방울이 눈썹과 코끝에 튀었고, 그 모습이 더없이 청순해 보였다.
유정은 백림을 바라보며 말했다.
“괜히 수고했네. 우리 할머니는 신희 핸드폰 도둑맞고 해킹당했다는 말을 믿어버렸어. 이미 다 용서했고, 오히려 내가 병문안도 안 갔다고 뭐라 하셨다니까.”
말할수록 분이 치밀어 오르는 듯, 유정은 이를 악물었다.
“내가 병문안 가서 산소호흡기를 뽑아버릴 거란 생각은 안하시나 봐!”
유정의 말에 백림은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난 네가 질투해서 화난 줄 알았는데, 내가 착각했네?”
유정은 그를 옆눈으로 쳐다보며 비웃듯 말했다.
“역시나 정 많고 마음 넓은 남자네?”
백림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향하자, 유정이 놀란 듯 물었다.
“야, 너 그냥 가? 뭐라도 한마디하고 가야지!”
예를 들어, 신희 욕이라도 같이 좀 해준다든가 그런 걸 기대한 유정이었다. 백림은 멈춰 서서 돌아보며 말했다.
“네 성격 보면 괴롭힘당할 사람은 네가 아니던데? 그리고...”
백림은 장난스럽게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나 있잖아.”
유정은 순간 어질어질해지며 소파에 털썩 쓰러졌고,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나중에 누가 날 어떻게 죽었냐고 묻거든, 벼락 맞은 너 옆에 끼어서 죽었다고 전해줘!”
백림은 유정의 엉뚱한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취해 있을 때도 참 재미있다는 생각에 그녀 곁으로 다가가 살짝 뺨을 두드리며 말했다.
“정말 죽었어?”
유정은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응.”
그러자 백림은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하며 말했다.
“그럼 그냥 죽게 둘 수 없지. 어차피 갈 거, 처녀 귀신은 되지 말아야지. 자, 이리 와봐!”
유정은 눈을 번쩍 뜨더니 소리를 지르며 백림을 밀쳐내고는 방으로 도망쳤다.
“변태!”
백림은 유정이 허둥지둥 도망치는 뒷모습을 보며 입가의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백림이 안방에서 나오자, 유정은 베란다 요가 매트 위에서 명상하고 있었다. 햇살이 그녀의 탄탄한 몸에 내려앉으며 젊음과 활력이 넘쳤다.
백림이 다가가 말했다.
“오, 환생했네?”
유정은 머리를 높게 틀어 올린 똥머리를 하고 있었고, 화장기 없는 얼굴이 상큼하고 생기 넘쳤다.
그리고 백림을 보자마자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백림이 물었다.
“기분은 좀 나아졌어?”
유정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완전 나아졌지!”
백림은 그녀의 밝은 표정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누구나 불공평하고 억울한 일을 겪기 마련이었다. 또한 어른이라면, 그런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아침 햇살을 받으며 개운하게 일어나면, 기분 좋게 새롭게 시작할 수도 있었다.
유정은 일어서며 말했다.
“아침 주문해 놓았어. 곧 도착할 거야.”
백림은 시계를 보고 말했다.
“아침엔 일이 있어서, 같이 못 먹겠네.”
그러자 유정은 놀란 듯 물었다.
“아침 안 먹고 가?”
“시간이 없어.”
그때 마침 초인종이 울렸는데, 배달 온 아침 식사였다.
백림은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고, 막 현관을 나서려는 순간 유정이 그를 불렀다.
“잠깐만!”
유정은 정성스럽게 다시 포장한 샌드위치를 손에 들고 와 백림에게 건넸다.
“차에서 먹어. 아침 거르면 몸에 안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