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42화
백림은 손에 든 샌드위치를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들어 유정을 바라보며 웃었다.
“느낌이 묘하네. 마치 남편 출근길에 아내가 이것저것 챙겨주는 분위기인데?”
유정의 얼굴이 순간 붉어졌다.
“웃기지 마. 너한테 그렇게 살뜰한 아내가 있을 리 없잖아. 기대하지 마.”
백림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건 아직 모르는 일이지.”
백림은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다 말고 다시 돌아보며 말했다.
“배웅은 필요 없어. 애 잘 보고 있어. 오늘 밤엔 들어올게!”
뜬금없는 말에 유정은 현관 선반에 있던 작은 장식품을 집어 들어 그에게 던질 듯이 팔을 들었다.
그러나 백림은 몸을 재빨리 틀어 피하고는, 순식간에 문을 닫아버렸다. 그래서 유정은 손에 든 장식품을 들고 있다가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
월요일 아침 회의에서, 회사는 정식으로 자율주행 자동차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프로젝트 책임자는 이미 해외 TG그룹과 협약을 체결했으며, 양사는 공동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고 핵심 기술도 상호 공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프로젝트가 돌파구를 찾았다는 점에 유정은 몹시 기뻤다.
며칠 전 할머니와 유신희가 그녀에게 준 불쾌감 따위는, 이제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후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을 무렵, 유정은 자기 비서를 불러 지시했다.
“오늘 내가 쏠 테니까, 개발팀 직원들 다 불러요. 고생 많았다고 한잔해야죠.”
그러자 비서는 기쁜 얼굴로 전달하러 나갔다.
유정은 컴퓨터를 켜고, 개인 이메일 계정을 열었다. 이 메일 계정은 아주 가까운 친구나 동창만이 알고 있는, 개인적인 용도의 계정이었다.
‘신기하네, 누가 보냈지?’
유정은 메일을 열었다.
[칠성님, 안녕하세요? 저는 주준이라고 해요.]
메일 서두를 본 유정의 표정은 순식간에 경직되었다. 학창 시절 그녀는 만화를 무척 좋아했고, 꿈도 만화가였다.
4학년 때 고전 동화를 각색한 프로젝트에 삽화 담당으로 참여했는데, 독특한 상상력과 감성적인 그림체 덕분에 약간의 인기를 얻었다.
그 후 잡지사와 협업으로 첫 번째 작품을 냈고, 소규모지만 꽤 인기를 끌었다. 그때 사용한 필명이 바로 칠성이었다.
하지만 졸업 후 가족의 부름을 받아 강성으로 돌아와 집안 기업을 물려받으며, 유정의 만화 인생은 그 자리에서 끝나버렸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누군가가 그 이름을 불러오자, 묻어두었던 기억과 감정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 시절, 오직 열정 하나로 밤을 새워 그림을 그리던 그날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주준, 그 역시 유명한 만화계의 전설 같은 인물이었고, 유정처럼 몇 년간 활동이 없었다. 사람들은 주준이 이미 은퇴했다고들 말했다.
[우연히 종말 속의 마을을 봤는데, 너무 감명 깊었어요.]
[마침 잡지사에서 세계 종말에서의 생존을 주제로 한 만화를 제안했는데, 당신과 함께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제 번호는...]
메일 하단에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는 모르지만, 당신은 그 재능을 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만약 꿈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꼭 전화 주세요. 이미 만화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실례했어요.]
유정은 그 메일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멍하니 있었다. 유정은 정말 만화를 사랑했다. 당시에도 그 꿈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많은 책임과 일이 있고, 만화를 다시 시작한다면 상대에게 부담만 주는 게 아닐까 걱정됐다.
거절 메일을 쓰려다 수차례 지우기를 반복했다. 유정은 어떤 선택 앞에서 이렇게까지 망설인 적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망설이다가, 퇴근 시간이 되자 결국 컴퓨터를 닫았는데,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퇴근 후 유정은 팀원들과 식사를 하고, 넘버 나인에서 노래방까지 갔다. 프로젝트가 진전된 데다, 다들 술도 한잔했기에 분위기는 최고조로 달아올랐다.
“이 한잔 제가 따를게요. 저희를 전폭적으로 밀어준 덕에 우리 프로젝트가 잘 돌아가는 거예요!”
새로 들어온 프로젝트 기술팀장 유안성은 술잔을 들고 유정에게 다가왔다. 박사 졸업 직후 합류한 그는 아직 낯을 많이 가렸고, 말도 좀 어눌했다. 술잔을 든 손이 살짝 떨리고, 얼굴은 잔뜩 붉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