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49화
유정은 점점 더 얼굴이 빨개졌다. 다시 한번 다리로 백림을 밀어내려 했지만, 이번에는 백림이 한 발 앞서서 유정의 움직임을 막아버렸다.
한 팔로 유정의 허리를 감싸 끌어안고, 눈을 감은 채로 다시 깊은 키스를 이어갔다.
백림의 몸에서는 은은한 향이 났는데, 마치 부드러운 단향 같았고, 키스는 능숙했다.
유정은 처음엔 밀어내려 했지만 점점 빠져들었다. 그러다 백림이 유정의 쇄골 아래로 입술을 내리며 키스하자, 유정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급히 그를 밀어냈고, 백림은 잠깐 넋을 잃은 듯 낮은 숨을 토해냈다. 백림의 검은 눈동자는 짙은 물결처럼 흔들리며 유정을 바라봤다.
유정은 손등으로 키스로 번진 입술을 꾹 문지르며 이 악물고 말했다.
“나중에 너한테 반드시 따질 거야!”
백림은 붉게 물든 입술을 올리며 매혹적으로 웃었다.
“그럼 서둘러 와. 침대에서 기다릴게.”
유정은 나가려다 그 말에 등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돌아서더니 손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셔츠에 문질렀다.
꺼져, 유정은 무음으로 입 모양만 만들었다.
“꺼져? 아, 침대로 꺼지라고? 너도 침대로 오겠다는 뜻이지?”
백림은 짓궂은 웃음을 지었으나, 유정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문 옆 선반 위에 있던 인형을 집어 백림에게 던졌다.
그러나 백림은 낚아채듯 인형을 받아들고는, 능글맞게 굴었다.
“이거, 우리 사랑의 증표야?”
혈압이 치솟은 유정은 더는 못 보겠다는 듯이 문을 활짝 열고 나가 버렸다.
문은 쿵 소리를 내며 닫혔고, 거실에 앉아 있던 안성은 깜짝 놀라 허둥지둥 고개를 돌렸다.
유정은 자신이 너무 드러났다는 걸 깨닫고, 억지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문이 바람에 닫힌 거예요.”
안성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전 먼저 가볼게요. 괜히 두 분 사이에 민폐인 것 같아서요.”
“마지막 한 장만 남았으니까, 괜찮아요.”
유정은 다시 자리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지막 문서를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성의 시선은 은근히 유정의 입술을 향했고, 눈빛에 음울한 기운이 감돌았다.
유정 역시 더 이상 집중이 안돼, 대충 내용을 확인하고 서명했고, 안성은 문서를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수고 많으셨어요.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고생했어요.”
유정은 짧게 웃으며 그를 현관까지 배웅했다.
문을 닫고 돌아오자마자, 유정은 물 한 잔을 들이킨 뒤 거실 소파로 향했다.
“조백림, 지금 당장 나와.”
유정은 침착하지만 단호한 톤으로 부르자, 백림은 느긋하게 게스트룸에서 걸어 나왔다.
“침대는 아니고 이번엔 소파에서?”
유정은 이를 악물고 노려보며 말했다.
“조백림, 너 지금 좀 심했어!”
“구체적으로 뭘?”
백림은 천연덕스럽게 소파에 앉아 묻자, 유정은 깊은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우리, 친구도 아니고 부부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관계잖아. 처음에 우리가 약속했듯이, 이 관계를 그냥 유지하는 거였다고. 너 그 약속 잊은 거야?”
백림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잊지 않았어.”
“그럼 넌 일부러 그런 거네. 난 그게 더 화가 나.”
백림은 유정을 곧게 바라보았다.
“그럼, 이런 건 어때? 우리 그 약속 없애고, 그냥 연애하면 안 돼? 난 네가 좋거든. 우리 둘, 꽤 괜찮게 잘 맞는다고 생각해.”
그러나 유정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맑은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넌 우리가 잘 맞는 이유가 뭔지 알아? 내가 너의 생활에 간섭하지 않아서 그래. 밖에서 무슨 짓을 해도, 난 모른 척해줘. 오히려 도와주기까지 하잖아.”
“너는 그런 자유로운 관계를 좋아해. 근데 그 약속이 사라지고, 우리가 진짜 커플이 되면?”
“난 너한테 기대하게 돼. 감정이 기면 질투도 하고, 다투게 되고, 우린 분명 지쳐.”
유정은 말끝을 또렷하게 맺었다.
“약속이 있어야, 우린 더 오래 갈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