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56화
“조백림!”
유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목소리마저 날카롭게 변했다.
처음엔 백림이 그저 겁만 주려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남자의 손이 자신의 치마 속을 더듬기 시작했을 때, 유정은 백림이 정말 선을 넘으려 한다는 걸 깨달았다.
유정이 온 힘을 다해 저항했지만, 체격 차이가 너무 컸다.
그리고 주먹이 백림의 몸에 닿아도 마치 냥냥펀치처럼 느껴졌고, 오히려 분위기만 더욱 짙게 달아올랐다.
늘 점잖고 여유로운 백림은 지금 이 순간, 거칠고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
분위기가 곧 폭주할 듯 통제 불능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 혼란 속에서 유정은 백림을 올려다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젖혀 남자의 어깨를 물어버렸다.
그녀는 정말 이를 세게 악물었다.
백림은 그제야 동작을 멈췄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유정을 바라보았지만 피하지도 않았고, 미간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그저 눈빛은 더욱 짙어졌고, 숨은 거칠게 터져 나왔다.
유정의 눈은 벌겋게 충혈됐고, 그녀는 천천히 물던 어깨를 놓았다. 조금 전 자신이 문 자리에 핏자국이 번져 그의 셔츠를 물들였고, 유정의 숨도 점점 거칠어졌다.
잠시의 정적이 흐른 뒤, 백림은 유정의 옷매무새를 정리해주고는 몸을 일으켰다.
유정은 옷깃을 부여잡은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기 방으로 도망치듯 뛰어갔다.
백림은 여전히 바닥에 앉은 채 셔츠 단추를 풀었는데, 어깨에는 선명한 치흔 두 줄이 있었고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윽고 백림은 허탈하게 웃었다.
“미친, 진짜 물어버리네.”
유정은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세게 닫았고, 곧장 힘이 빠진 듯 문을 등지고 주저앉았다. 심장은 쿵쾅거렸고, 분노와 두려움 사이를 오갔다.
그 순간, 예전 일이 떠올랐다. 처음 백림이 성준의 존재를 알았을 때, 농구장에서 그를 무참히 짓밟고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강제로 키스했던 날.
그 키스는 벌이었고, 사람들은 환호했지만 유정만은 알았다.
백림은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그날의 느낌이, 오늘 더 강하고, 더 분명하게 되살아났다.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마음을 추슬렀고, 유정은 바로 욕실로 향해 옷을 벗었다.
거울에 비친 몸 여기저기에는 자국이 남아 있었고, 그녀는 치를 떨며 샤워기를 틀었다.
따뜻한 물이 쏟아지는 가운데, 유정은 살이 벗겨질 정도로 세게 몸을 씻었다.
다음 날, 유정은 해성으로 향했고, 장의현은 유정이 예고 없이 찾아온 걸 보고 놀라며 반가워했다.
“설마 일부러 날 보러 온 건 아니지?”
해성은 강성보다 몇 도쯤 더 추웠고, 유정은 부드러운 고급스러운 고목 니트와 롱스커트를 입고 있었는데,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사실은 출장이야. 원래 다른 사람이 올 예정이었는데 너 보러 내가 대신 왔지.”
바람이 유정의 느슨한 머리카락을 흩날리자, 유정은 손으로 귀 뒤로 넘기며 해가 지는 강가를 바라봤다.
“가자. 술이나 마시러.”
출장도 사실이었고, 의현을 보고 싶었던 것도 진심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백림을 피하고 싶었던 것도 아주 큰 이유였다. 같은 도시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숨이 막혔다.
해가 진 후, 두 사람은 해성의 한 바에 앉아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잘생긴 남자들의 퍼포먼스를 구경하며 분위기는 유쾌했다.
의현은 술잔을 기울이며 최근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요즘 집에서 자꾸 소개해 줘. 지난번엔 그나마 괜찮은 사람 같아서 한 번 더 만나봤는데, 두 번째 만남에 호텔 얘기를 꺼내는 거 있지?”
“그래서 어떻게 했어?”
“어떡하긴, 끝이지 뭐.”
의현은 한숨을 쉬며 잔을 비웠다.
“우리 회사 사람들은 사귀는 날 바로 자기도 하더라. 나만 너무 보수적인가 싶기도 해.”
유정은 조용히 말했다.
“그런 건 서로 마음이 맞을 때 자연스럽게 되는 거 아냐?”
“근데 우리 동료 말이 맞는 것도 같아. 일단 해보고 맞는지 안 맞는지 보는 게, 시간 낭비 안 하는 방법이라잖아.”
유정은 살짝 찡그리며 대꾸하지 못했는데,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의현은 유정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근데 너랑 네 남자친구 그런 건 잘 맞아?”
유정은 눈을 굴리며 대답했다.
“나 말했잖아. 우리는 정략 결혼이라고. 서로에 대해 아무 감정 없어.”
의현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감정도 없는데, 그렇게 오래 지내면서 한 번도 그런 적 없어? 너도 참 대단하다. 근데 그 사람도 참 잘 참네?”
유정은 잠시 말이 없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은 참을 필요가 없어. 밖에 그 사람이랑 자고 싶은 여자들 줄을 서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