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58화
해성에 이틀 머문 뒤, 강성으로 돌아가는 날 유정은 마음을 정했다.
조백림의 집에서 당장 나가고, 이후 집안과 파혼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오후 네 시, 비행기가 착륙했다.
유정은 휴대폰을 키자 서은혜에게서 부재중 전화 세 통이 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걸어 나오면서 유정이 바로 전화를 걸자 서은혜는 곧 받았다. 운 듯 목소리는 여전히 쉬어 있었다.
[유정아, 네 아버지 쓰러졌어. 지금 병원에서 응급처치 중이야!]
유정의 머릿속이 윙 하고 울렸고,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어느 병원이에요? 무슨 병인데요?”
[뇌출혈이래.]
서은혜는 병원 이름도 말하자, 유정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눌러가며 바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마음이 타들어 갔고, 병원에 도착했을 땐 하늘이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응급실 복도에는 유씨 집안 사람들이 거의 다 모여 있었다.
“유정아!”
서은혜는 유정을 보자 달려와 안으며 눈물을 터뜨렸다.
유정은 창백한 얼굴로 응급실에 켜진 불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빠는 어때요? 어떻게 갑자기 뇌출혈이에요?”
그 어떤 징조도 없었기에 당황스러웠고, 서은혜는 울먹이며 말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점심에 너희 아버지랑 외식했는데, 식사 후에 차를 가지러 갔거든. 한참이 지나도 안 와서 내가 가봤더니 차 옆에 쓰러져 있었어.”
“너한테 전화했는데 안 받더라. 다행히 백림이가 근처에 있었고, 걔가 나랑 같이 병원으로 옮겼어. 제일 좋은 의사도 백림이 수소문했고, 수속도 다 밟아줬어.”
서은혜는 완전히 겁에 질려 중심을 잃은 상태였기에, 백림이 아니었으면 아무것도 못 했을 것이다.
유정은 고개를 들어 천천히 다가오는 백림을 바라봤다.
해는 저물었고, 하늘은 어둑어둑했다.
백색 조명 아래, 백림의 얼굴은 늘 그렇듯 잘생겼지만, 지금은 장난스럽고 나른한 기색 없이 깊고 고요했다.
지금까지의 모든 분노는 이 순간의 불안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유정은 목이 메어 낮게 말했다.
“고마워.”
백림은 유정의 피곤에 찌든 모습을 훑어보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가족인데, 무슨 고맙다고 해.”
유정은 시선을 내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나 수술이 끝났고, 의사가 나와 가족들에게 수술은 성공적이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큰 출혈은 아니었고, 환자는 이미 위험을 벗어났지만, 후유증 여부는 깨어나야 알 수 있다고 했다.
서은혜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했고, 유정 또한 안도하며 긴장이 풀렸다.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병실로 옮겨 정리한 후, 간병인도 도착했고, 유정은 유탁준 곁에 앉아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유탁준은 눈을 감고 있었고, 얼굴은 창백했다.
유정은 문득 아버지가 조금 나약하고 의존적일지라도 괜찮다고, 건강하게 살아만 있어 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지태와 신화선은 연세가 많아 오래 병원에 있을 수 없어 먼저 돌아갔고, 유탁준은 여전히 의식이 없어 조용한 환경이 필요했기에 유씨 집안 사람들은 차례로 자리를 떴다.
유정은 약간의 물품을 챙겨 병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때, 유신희와 백림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문득 백림이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고, 지금 두 사람의 모습은 유정의 눈에 특히 거슬렸다.
신희는 크림색 코트를 입고 있었고, 사랑스럽고 단정한 모습으로 부드럽게 말했다.
“고마워요. 의사 선생님 말씀으론 다행히 제때 병원에 오신 덕분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백림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유정이가 강성에 없으니까, 내가 있어야 하는 거죠.”
신희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사장님이 언니 곁에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에요. 언니는 성격이 조금 강한 편이라, 사장님께서 더 이해해 주셔야 할 거예요.”
신희는 복도를 등지고 있었고, 그 순간 유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또 누가 내 약혼자 앞에서 내 험담을 하나 했더니, 우리 사촌이었네?”
백림은 시선을 들어 유정을 바라봤다. 그 눈빛엔 흥미가 담겨 있었고, 웃는 듯 말 듯한 표정이었다. 신희는 놀라 돌아섰고, 얼굴이 한층 더 창백해졌다. 곧이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언니, 오해하지 마요. 난 그저 감사 인사드렸을 뿐이에요.”
유정은 신희의 옆을 지나며 백림의 팔을 끼고는 담담히 말했다.
“참 신기하네. 내 약혼자가 내 아버지를 도왔는데, 왜 사촌인 네가 나서서 감사하냐고?”
날 선 말임에도 불구하고 신희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둘의 관계가 깊으니까 감사 인사가 필요 없을 수도 있지만, 나는 유씨 집안 사람으로서, 고마움을 표현하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요.”
신희는 부드럽게 웃었다.
“큰아버지가 위기를 넘기셨으니 저도 이만 가볼게요. 내일 아침 다시 찾아뵐게요. 두 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