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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59화

말을 마친 유신희는 우아하게 몸을 돌려 천천히 걸어 나갔고, 백림은 시선을 떨군 채 유정을 바라보며 장난스레 웃었다. “어쩐지 늘 손해만 보더라. 수싸움으로 따지면 확실히 한참 뒤처지긴 하지.” 유정은 백림이 자신을 말하는 걸 알았다. 곁눈질로 그를 흘겨보고는 팔을 뿌리치듯 놔버리고 그대로 돌아서서 걸어갔다. 이에 백림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뒤따라 걸음을 옮겼다. 서은혜는 유정에게 돌아가서 좀 쉬라고 했지만, 유정은 완강히 버텼다. 백림 역시 끝까지 남겠다고 했고, 결국 두 사람은 밤늦도록 병원에 머물다 서은혜의 거듭된 권유에 병원을 나섰다. 다시 망강 아파트로 돌아온 유정은 해성에서 비행기를 탈 때 결심했던 일들이 다시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고 방 안 공기도 답답했다. 그래서 유정은 유리문을 밀고 베란다로 나가자, 늦가을 새벽 공기가 차갑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윽고 유정의 뒤로 백림이 다가와 옆에 나란히 섰고, 유정은 시선을 내리깔며 말했다. “가서 쉬어. 나 혼자 있고 싶어.” “유정아.” 낮고 가라앉은 백림의 목소리에 유정이 돌아보았다. “응?” 이때, 백림은 갑자기 팔을 뻗어 유정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유정은 반사적으로 몸을 빼려 했지만, 남자의 손이 가녀린 어깨를 단단히 눌렀고, 곧장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날 밤은 내 잘못이야. 인제 그만 화 풀어.” 유정은 너무 지쳐서였을까? 당장 뿌리치지 못하고, 그냥 조용히 남자의 품 안에 기대었다. 백림의 어깨는 넓고 단단했고, 왠지 모르게 이대로 잠깐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림은 유정의 어깨를 토닥이며 부드럽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나는 절대 유신희랑 결혼 안 해.” 유정은 베란다 밖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을 보며, 헛웃음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걱정했다고?” 백림은 그녀의 옆얼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걱정 안 했어? 그럼 왜 내가 유신희랑 같이 있는 거 보고, 곧장 와서 내 약혼자라고 했는데?” “내가 언...!” 유정은 얼굴이 뜨거워져 백림을 밀치려 했으나, 백림은 유정의 허리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알겠어, 알겠어. 유신희가 나한테 들이대는 거 못 봐주겠어서 화난 거지? 나 때문은 아니고.” 유정은 백림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 피식 웃었다. “알면 됐어.” 잠시 침묵이 흘렀고, 백림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어깨, 네가 문 데 좀 나았나 확인 좀 해볼래?” 그제야 유정은 며칠 전 자신이 백림의 어깨를 물었던 일이 떠올랐다. 작게 잘 됐다며 중얼거리더니, 그의 셔츠를 살짝 걷어보았다. 상처 부위는 아직도 붉고 험하게 남아 있자, 유정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땐 정말 이를 악물고 물어서 그런지 며칠이 지나도 아직 저 상태였다. “처치는 했어?” “아니? 너한테 물린 증거니까. 영원히 간직할 거야.” 유정은 살짝 미안해져서 말했다. “미안.” 그러자 백림은 비웃듯 말했다. “미안하단 말로 다 퉁칠 수 있을까?” 유정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 백림의 눈빛은 어둡고 깊었다. “나도 한번 물게 해. 그럼 무승부지, 안 따질게.” 유정은 처음엔 당연히 거부하려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백림이 오늘 아버지를 구해줬고, 병원에서도 끝까지 함께 있었다. 정서적으로는 자신이 한참을 빚진 상황이었다. ‘물리면 물리는 거지 뭐. 내일 가서 광견병 예방주사 맞으면 되지.’ 유정은 눈을 감고, 어깨를 살짝 내밀며 각오했다. “물어.” 백림은 유정의 허리를 감싸 안고, 떨리는 그녀의 긴 속눈썹을 바라봤다. 그의 눈은 깊은 밤처럼 어두웠고, 시선은 유정의 어깨에서 천천히 입술로 내려왔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진짜 물 거야? 너, 읍!” 유정이 입을 열자마자, 백림의 입술이 유정의 입술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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