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70화
정선숙 아주머니의 눈빛에는 차가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
“오늘 오후에 조길창 씨 부인이 찾아왔어요. 사모님께 차를 전해드린다고 하면서, 일부러 몇 장의 사진을 보여드렸죠.”
“지난달 조시안 생일 때, 그 여자가 남편분과 함께 생일 파티를 해준 사진들이었어요.”
백림의 눈빛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앞으로 그 여자가 또 찾아오면, 어머니는 기도 중이라 손님을 받지 않으신다고 전하세요. 절대 들이지 마세요.”
정선숙 아주머니는 고개를 숙이며 자책했다.
“제가 너무 방심했어요.”
이어 덧붙였다.
“사모님은 자신의 생일에 남편분이 오지 않은 것도 개의치 않으셨어요. 하지만 도련님 생일에 남편이 안 오고 조시안 생일을 챙긴 건, 너무 속상하셨던 거죠.”
백림은 찬 바람이 이는 가을밤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해했어요.”
본가를 떠난 백림은 운전기사가 자신의 빌라 방향으로 차를 돌리자 말했다.
“망강 아파트로 가죠.”
기사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각, 유정은 꿈을 꾸고 있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주윤숙의 서재에 있었고, 백림과 함께 의자에 앉아 입을 맞추고 있었다.
백림은 몸을 기울여 그녀를 누르고, 턱을 감싸며 부드럽고 깊게 키스했다.
언제부턴가 커튼이 내려져 방 안은 캄캄했고, 남자의 숨결만이 점점 더 진하게 퍼졌다.
낮에 술을 마신 걸까? 점심은 함께 주윤숙과 식사했는데, 술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백림의 입안에서는 달고 짙은 술 향이 퍼져 나왔고, 그것은 마치 불처럼 유정의 입안 구석구석을 태우는 느낌이었다.
유정은 꿈속과 현실 사이에서 흐릿한 의식으로 생각했다.
‘내가 이 사람한테 조금은 빠져 있는 걸까?’
유정은 이 모든 게 허무하다고 느끼면서도, 그 남자가 자꾸 가까이 다가오는 걸 왜 받아들였는지 이해하려 했다.
‘이런 꿈까지 꾸는 이유는 왜일까? 아니야. 그날 낮에, 조백림은 술을 마시지 않았어. 그럼 이 술 냄새는 어디서 온 걸까?’
생각이 점점 또렷해지자 유정은 눈을 떴다.
어두운 방 안,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백림의 얼굴이 보였고, 그 순간 얼굴빛이 바뀌며 몸부림쳤다.
백림은 그녀의 팔을 감싸 안은 채, 어깨에 얼굴을 묻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유정아.”
유정은 그 말에 잠시 멈칫했지만, 곧 분노가 치밀어올라 외쳤다.
“조백림, 넌 진짜 뻔뻔해!”
한밤중 몰래 그녀 방에 들어와, 잠든 틈을 타서 이런 짓이라니, 상상만 해도 역겨웠다.
유정은 백림이 변명할 줄 알았다으나, 예상외로 그는 담담하게 사과했다.
“미안해.”
유정은 점점 진정하며 물었다.
“술 마셨어?”
하지만 백림은 그녀의 배려 섞인 물음에도 솔직히 말했다.
“아니? 그냥 너한테 입 맞추고 싶었어.”
유정은 백림이 확실히 취한 거라고 생각해, 몸을 살짝 비틀며 말했다.
“그만 자. 돌아가서 자.”
백림은 유정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이마를 베개에 붙인 채 낮게 말했다.
“조금만 안고 있게 해줘.”
유정은 백림의 몸에서 풍기는 술 냄새를 맡으며 문득 오늘 엘리베이터 안에서 들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도대체 오늘 누구와 입을 맞춘 입술로 지금 자기한테 다가온 건가 싶자, 속이 울렁거렸다.
유정은 몸을 비틀며 걷어찼다.
“네 방 가서 자! 술 냄새 장난 아니야!”
이번엔 백림도 억지 부리지 않고 조용히 일어나 방을 나갔다.
백림이 떠났지만, 유정은 좀처럼 잠이 들지 않았다.
분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가 양치질을 다시 하고, 다시 누웠지만 기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겨우 잠이 들려고 할 때, 문 여는 소리가 또 들려왔고, 유정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조백림, 도대체 왜 이래?”
“혼자선 잠이 안 와.”
백림은 유정의 옆에 앉았고,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더니 그대로 함께 침대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