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11화
“사장님, 정말 이대로 가셔도 괜찮으시겠어요?”
은미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듯 묻자, 백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다들 은미 씨를 얕보시네요. 은미 씨를 진짜로 감당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실력이 출중하다는 거겠죠.”
그 말만 남긴 채, 백림은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났다.
은미는 조백림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눈빛에는 아쉬움과 허탈함이 스쳤고, 고개를 숙이며 그 자리에 잠시 서 있었다.
주말이 되었고, 전날 술자리가 있었던 백림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정오 무렵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정선숙 아주머니가 백림이 벗은 외투를 받아서 들며 다정하게 인사했다.
“오셨어요, 도련님.”
“어머니는요?”
백림은 거실 쪽을 힐끗 바라보며 물었다.
“2층에 계세요.”
이에 백림은 고개를 끄덕이고, 계단을 올라 2층으로 향했다.
서재 문이 반쯤 열려 있자, 백림은 조용히 문을 밀고 들어갔다. 방긋 웃으며 인사하려던 순간, 걸음을 멈췄다.
책상 앞에 앉은 유정이 넉넉한 니트 차림으로 단정히 앉아 있었고, 옆모습은 진지하고 고요했다.
유정은 손에 붓을 들고 경전을 베껴 쓰고 있었고, 햇살이 풀어진 그녀의 머리 위로 내려앉아 연한 황금빛 광택을 만들어냈다.
그 빛은 유정의 귓불 아래 피부를 더 하얗고 여리게 비추고 있었다.
문 여는 소리는 작았고, 유정은 깊이 집중하고 있어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 모습에 백림의 눈빛이 스르르 부드러워졌다.
백림은 조심스레 걸어가 유정의 등 뒤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그녀가 적는 글씨를 바라보았다. 한 글자 한 글자 정갈하고 힘 있는 붓글씨였다.
그 순간 유정이 미세하게 눈을 움직이며 고개를 들자, 두 사람의 시선이 정확히 마주쳤다.
아주 가까운 거리, 백림의 깊고 짙은 눈빛 속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진짜로 경전 베껴 쓰는 거 좋아했어?”
유정의 속눈썹이 가볍게 떨렸고, 곧장 시선을 내리고 다시 먹을 찍어 글씨를 이어 나갔다.
“내가 먹 갈아줄까?”
백림은 소매를 걷으며 말하자, 유정은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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