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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45화

유정의 얼굴이 순간 하얘졌다. 놀람과 두려움, 실망이 한꺼번에 몰려와 가슴 깊숙이 내려앉았다. 잠시 숨을 고른 뒤, 그녀는 낮게 말했다. [고마워. 날 구해줘서.] “고맙긴. 아직 넌 내 약혼자잖아. 널 지키는 건 당연한 일이지.” 백림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 묘하게 눌린 감정이 깃들어 있었고, 유정은 눈을 떨궜다. [그러면 이만.] 전화를 끊은 뒤, 유정은 천천히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표정은 여전히 가라앉아 있었고, 어두워진 눈빛이 방 안에 드리워졌다. 장의현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무슨 일이야? 누가 널 납치한 거야?” 유정은 백림과 조시안, 그리고 자신 사이에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설명했다. 얘기를 마친 후에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조시안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의현은 눈빛을 흘기며 말했다. “원래부터 속이 검었을지도 몰라. 유신희랑 약혼하고 나서는 백림을 증오했겠지. 그래서 널 이용해서 복수하려 한 거야.” 의현은 냉소적인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너랑 백림 씨 헤어진 거, 그 사람들도 알고 있었을 거야. 어젯밤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났으면, 네가 입도 못 열 거라는 계산도 했겠지.” “도련님이 될 뻔한 사람과 그런 일이 생겼다면, 두 사람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이 될 테니까.” 그리고 유씨 집안과 조씨 집안의 관계도, 이제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을 터였다. “진짜, 악질이다.” 의현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백림 씨한테 그 모자 얘긴 물어봤어? 그 여잔 지금 어떻게 됐는지?” 유정은 아까 정신이 없어서 묻지 못했던 걸 떠올렸고, 이내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백림 씨가 가만둘 리 없어.” 의현이 단언하듯 말했다. 유정은 예전에 시안을 따라 그 여자를 만났던 일을 떠올렸다. 그땐 여경이 조변우의 내연녀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여경은 겉보기엔 다정하고 친절했지만, 묘하게 불편한 기분이 따라붙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남의 남편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오랜 시간 관계를 유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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