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00장

그날의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린 염정훈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났다. 만약 그것이 꿈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고 일어난 일이라면? 그렇다면 앞에 있는 이 여자는 바로 서정희이다! 이 생각을 한순간 염정훈은 온몸에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청진기를 들고 염정훈의 심장 박동을 체크하던 서정희는 혼자 중얼거렸다. “심장이 왜 이렇게 빨리 뛰지?” 염정훈에게 이불을 덮어준 후 걸상에 앉아 염정훈의 한쪽 팔을 옆으로 빼냈다. “평소대로 숨을 쉬면 됩니다. 맥 좀 짚어 볼게요.” 염정훈의 머릿속에 기쁨과 희열이 가득 차 있을 줄은 서정희도 모를 것이다. 이 모든 원인과 결과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왜 이 명의가 제시간에 도착해서 아무런 조건도 제시하지 않고 그를 도왔는지... 그리고 3일 밤낮을 꼬박 새워 직접 약까지 달였는지... 그녀를 안았을 때 저도 모르게 소리 질렀던 그녀의 목소리는 분명 서정희였다. 잘못 들은 것은 아니었다! 그날 그 꿈을 꾸게 된 이유는 그가 서정희의 검진을 거부했기 때문에 건강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런 방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염정훈의 머릿속에 한 소녀의 윤곽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저 애가 아직 세 살이 안 됐다던데 설마... 염정훈의 머릿속에 4년 전의 그날이 떠올랐다. 그날 밤 배 위에서 서정희의 약효를 풀어주고 A 시로 데려다주었다. 다음 날 하위현에게서 전화가 와 서정희가 피임약을 준비해 달라는 말을 전했다. 하지만 염정훈은 안 그래도 몸이 허약한 서정희에게 피임약은 분명 더 몸에 안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예전에 의사 선생님도 말했었다. 정희가 몸이 많이 안 좋아져 임신이 쉽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염정훈은 하위현에게 피임약 대신 비타민을 서정희에게 주라고 했다. 그런데 딱 이 한 번에 임신이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어쩐지 애가 서정희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여자애의 눈이 왜 초록색일까? 그와 서정희의 눈동자는 모두 검은색인데 말이다. 정희가 잘 살아있고 예쁜 딸까지 낳은 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