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09장

명훈이 염정훈의 기분 변화를 알아채지 못할 리 없었다. 바로 문을 닫아 걸고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형님, 말씀만 하세요.” 염정훈은 심호흡을 몇 번이나 하면서 진정하려 했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현재의 상황을 이성적으로 분석했다. 만약 서정희와 정원정 사이에 무슨 일이 생겼다면 지금 막으려 해도 이미 늦었다. 반대로 두 사람이 그런 관계가 아니라면 정원정이 아직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했단 것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자신이 그를 증오하는 것보다 그가 자신을 더 증오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허둥대지 않고 두 사람의 관계부터 파악하는 것이 우선 순위였다. 생각을 정리한 염정훈이 명훈의 귓가에 속삭였다. 명훈은 마음에 내켜 하지 않는 눈치였다. “대표님, 너무 위험해요.” “내가 말한 대로 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 새끼를 잡지.” 명훈은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대표님은 누굴 잡으려는 거지? 염정훈은 방안에 앉아 가만히 있었다. 명훈이 그에게 마당 전체와 주변 사물 배치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복잡한 부분을 설명할 때는 그의 손바닥에 간단하게 지도를 그려 주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경전을 듣는 것 같았겠지만 머리가 뛰어난 염정훈은 머릿속에 바로 지도 한 폭이 그려졌다. 설명을 다 듣고 난 염정훈은 방안을 더듬어 보았다. 방 안의 물건의 위치와 높이를 이제는 대충 알만 했다. “됐어. 이젠 밖으로 나가보자.” 명훈이 그의 손을 잡고 천천히 밖을 둘러보았다. 염정훈은 명훈에게서 서정희가 옆 별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밖은 어둠이 막 내려앉을 때였다. 제숙이 마당에서 약을 찧고 있었다. 마당에는 절구 찧는 소리와 제숙이 소희에게 약성에 대해 설명하는 소리만 들려왔다. 서정희와 정원정은 마당에 없었다. 설마 두 사람 밤이 되자마자 시작한 건 아니겠지? 염정훈은 고양이가 속을 박박 긁는 것 같았지만 겉으로는 평온한 척해야 했다. 제숙이 행동이 느린 염정훈을 보고 먼저 입을 열었다. “거기, 이리 좀 와 봐.” 명훈이 먼저 소개를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