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4장

염정훈은 이내 도착했다. 서정희는 다음날에 다시 오려고 계획했다. 이런 상황에서 염정훈과 만나는 것도 이상했다. 그런데 서정희가 어른신과 작별인사를 하기도 전에 염정훈이 급하게 당도했다. 당시 백지연으로 인해 백신 부부와 서재평이 죽었기에 백 어리신도 딱히 별다른 방도가 없어서 염정훈의 파혼을 받아들였다. 몇 년 간 백지연은 계속해서 염정훈과의 관계를 만회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염정훈은 가차 없이 그녀의 연락처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연락 두절했다. 그런 상황에서 어렵게 만나게 된 염정훈이기에 백 어르신의 기대도 만만치 않았다. 염정훈. 본인이 원하지 않아서 그렇지, 백 씨 가문을 상속받기에 가장 적합한 상대가 그였다. 집사가 백지연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그녀는 화장하느라 바빴다. 그녀는 어르신이 이 일을 알기를 바라지 않았다. 이미 자신을 낳은 부모님과 백선을 죽음으로 몰았기에, 이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할아버지까지 잃고 싶지 않았다. 백현은 백지연의 심리를 알고 있었기에 몇 년 간 그녀를 함부로 대했다. 이 일은 유희만 알고 있었다. “얼른 밖으로 나가. 정훈이가 왔잖아.” 서정희는 복도에서 눈 내리는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이때 정장 차림을 한 남자가 부하 몇 명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최근 몇 년 간 백지연은 인터넷을 통해 염정훈에 관한 소식을 접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눈앞에 나타나자 심경이 복잡했다. 백지연은 염정훈을 보자마자 자신이 다리를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고 앞으로 나아가다가 바닥에 심하게 넘어졌다. 만 가지 정서가 뒤섞였지만 입가에서는 그의 이름만 흘러나왔다. “정훈......” 다만 염정훈은 백지연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백지연을 지나쳐 바로 서정희 앞에서 멈췄다. 설령 서정희가 가면을 쓰고 있더라도 익숙한 눈빛과 마주치자, 염정훈의 마음도 백지연과 같았다.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가 다시 한 번 자신의 삶에서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 “정훈아, 드디어 왔구나.” 백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려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