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5장

짧은 이틀 동안 염정훈은 정상인으로부터 몸의 각 기관들이 모두 쇠약해지고 있었다. 감각기관들이 기능을 상실해가는 과정에서 염정훈은 많은 생각을 했다. 가장 많이는 서정희와의 추억이었다. 3년 동안 그녀를 볼 수 없었던 그는 그녀와의 추억으로 겨우 버텨왔다. 매일 분주한 일상으로 그녀에 대한 그리움을 무마하려 했지만, 일단 여유만 생기면 그녀가 미친 듯이 보고 싶었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은 마치 가시넝쿨이 되어 그를 옥죄어왔다. 발악할수록 고통이 배가되었고, 상처투성이가 되어서 쉼 쉬는 순간순간이 고통이었다. 그래서 몸이 고통에 빠지자 뭔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죽으면 서정희 곁으로 가서 그녀를 볼 수 있겠지? 그녀는 암세포로 인해 긴 시간 고통에 시달렸다. 지금 그녀가 느꼈던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은 이틀만 버티면 되는데, 서정희는 고통의 나날이 몇 년이나 지속됐다. 그걸 생각할 때마다 염정훈은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자신이 천 번을 죽고, 만 번을 죽는다 하더라도 서정희가 겪었던 고난에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정희야...... 자나 깨나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를 그는 영영 잃었다. 살아서는 다시 그녀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염정훈은 펜을 들고 유서를 써내려갔다. 유서라고 해서 딱히 복잡하게 쓸 것도 없었다. 염씨 가문은 염정한이 이어받으면 되고, 그의 모든 재산은 그와 전처에게 남겨주면 되었다. 다만 염씨 가문의 재산이 하도 많아서 일일이 배분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시간은 1분 1초 지나갔다. 해가 떨어져서 산 저편에는 노을이 비꼈다. 염정훈은 지평선을 넘어가는 해를 보면서 자신의 목숨이 끝을 달려가고 있음을 느꼈다. “대표님, 좀 쉬어요.” “괜찮아. 좀 있으면 눈이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고, 펜을 들 기운도 없을까 봐 얼른 적어야돼.” 한송이는 옆에서 대성통곡했다. 신과도 같았던 그가 무너져가고 있었다. 왜 하늘은 그에게 이렇게도 가혹한 것인가?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