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8장

진영은 염정훈이 기댈 수 있게 나무 옆에 그를 내려놓았다. 염정훈의 몸은 눈에 띄게 허약해졌다. 마치 촛물이 조금씩 흘러 내려서 촛불이 다 타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새벽바람이 불어오자 염정훈의 머리가 다소 맑아졌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진영아, 내 생에 가장 후회되는 일이 뭔지 알아? 백지연의 어이없는 요구를 받아들여 서씨 집안을 향한 분노를 정희에게 분출한 것이야. 만약 나만 아니었더라면 정희는 그렇게 많은 고난을 겪을 필요가 없었을 거고, 지금 가족이 산산조각이 나서 완전한 집 하나 없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거야.” “대표님도 사정이 있었잖아요. 그게 대표님만의 잘못은 아니죠.” “사정? 예전에는 그걸로 핑계를 삼았는데, 이 세상에 자신의 사정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가하는 게 정당화되는 법은 없어.” 염정훈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어렸을 때에는 아빠가 너무 미웠어. 그래서 나중에 크면 사랑하는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겠다고 맹세했어. 그런데 결국은 사랑의 명목으로 정희를 상처투성이로 만들었어. 잘못했다는 걸 알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정희도 나를 용서하지 않을 거잖아. 오늘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다 나 스스로 자초한 거야.” 사람은 생명이 끝나갈 무렵에야 뭐든 더 분명하게 보이는 법이다.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미래가 없기에 유난히 과거에 집착하게 된다. 기억이란 사람의 머릿속에서 쳇바퀴 돌아가듯이 끊임없이 돌아간다. “지금 후회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 이게 다 내가 받아야 할 벌인 걸. 당시 정희가 말했던 말이 현실이 됐네. 살아서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진영은 염정훈의 손을 잡았다. 분명 젊은이의 손인데 노인처럼 떨림이 심했다. “대표님 옆에는 제가 있잖습니까.” 진상정도 따라왔다. “저도 있습니다.” “그래. 형제와 같은 너희들이 나의 마감을 지키는 것만으로 이 생에 미련은 없다.” 염정훈은 미소를 지었다. 죽어가는 사람의 언행은 선하게 바뀌는 법이다. “사실 이 목숨은 예전에 이미 끊어져야 했어. 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