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9장

서정희는 부리나케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어제오늘 약을 달이느라 거의 쉬지도 못했다. 처음 3일은 가장 중요한 때이다. 절대 약을 끊어서는 안 된다. 방금 염정훈에게 갑자기 잡히는 바람에 서정희는 하마터면 정체를 들킬 뻔했다. 가면을 벗고 수건으로 젖은 곳을 닦았다. 그리고 짬을 내서 옷까지 갈아입었다. 염정훈의 삐뚤어진 성격상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병을 치료하기 편했다. 의식이 돌아온 이상 앞으로 몸 상태를 체크할 때 이 인간이 또 어떤 행동을 할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서정희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따로 약을 준비했다. 마스크를 다시 얼굴에 붙인 서정희는 더 이상 허비할 시간이 없어 서둘러 동굴로 들어갔다. 약을 달이며 기다리는 동안 과일 몇 개를 먹으며 배를 채웠다. 그러자 피곤했던 몸도 많이 좋아졌다. “몸을 안 보여주겠다고 하니까 그쪽이 대신 보고 저에게 설명해 주세요.” 서정희가 진상정에게 말했다. “알겠어요.” 서정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진상정과 염정훈은 서로 정보를 주고받았다. 진상정은 심각한 표정으로 서정희에게 보고했다. “몸에 핀 독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위는 쇄골까지 그리고 아래는 배꼽 아래, 등은 엉덩이까지 있었어요.” 염정훈이 노려보자 진상정은 헛기침을 했다. “허벅지까지요.” “색깔은 어땠나요? 굵기는요? 모양도 말해보세요.” “그게...” 한참을 생각해도 단어가 떠오르지 않자 진상정은 휴대전화로 염정훈의 신체 부위를 몇 장 찍었다. “자, 선생님. 직접 보세요.” 중요 부위를 피한 사진들이었지만 그 속에서 염정훈의 탄탄한 몸이 여지없이 잘 드러났다. 선명한 턱선, 튀어나온 쇄골, 야성미가 넘치는 복근에 가만히 있어도 근육 라인이 선명한 허벅지까지... 붉은 자국을 훑어보던 서정희는 빨간 모양의 독이 10분의 1 정도 가라앉은 것을 확인했다. “네, 알겠어요.” 다음날이 되자 염정훈의 상태는 조금 더 좋아졌다. 하지만 땀을 너무 많이 흘린 나머지 몸이 허약하기 그지없었다. 진상정은 그를 부축해 일으킨 후 가운을 둘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