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2화 증거 있어

부시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맞은 게 뻔했다. 윤슬은 화가 나면서도 마음이 따뜻했다. 그녀와 점심을 같이 먹으려고 먹지 않았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 윤슬은 한숨을 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럴 필요 없어요. 제가 자는 걸 알면서도 기다리다니. 그리고 제가 언제 깰지도 모르잖아요. 퇴근할 때까지 자면 그때까지 기다릴 거예요?" 부시혁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무슨 큰일도 아니고 표정이 왜 그렇게 엄숙해?" "이게 큰일이 아니에요?" 윤슬은 언성을 높였다. "밥을 제때에 안 먹는 게 건강에 얼마나 안 좋은지 알아요? 더구나 어제 사고 났잖아요." "괜찮아." 부시혁은 고개를 저었다. 한 끼 늦게 먹는다고 별문제 없을 거란 뜻이었다. 윤슬은 대수롭지 않은 그의 표정을 보며 화가 나서 그의 허벅지를 때렸다. 그 아픔에 부시혁은 신음을 내었다. 윤슬은 콧방귀를 뀌었다. "싸요!" "화났어?" 부시혁은 그녀에게 맞아 얼얼한 허벅지를 만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윤슬은 그와 두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고개를 돌려버렸다. "화 안 나겠어요? 밥도 제때 안 먹고 또 그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제가 화 안 나게 생겼어요? 당신 건강을 걱정해서 그러는 건데 정작 본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잖아요." "아니야." 부시혁은 손을 내밀고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몸을 다시 돌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신경 안 쓰는 게 아니야. 네가 한 말 다 기억하고 있어. 그저 한 끼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한 것뿐이야. 그리고 나 혼자 먹는 것보다 너랑 같이 먹고 싶어서. 둘이 먹는 게 더 맛있잖아." 윤슬은 그를 한번 쳐다보았다. "말은 그렇지만 사실 절 깨워도 되잖아요." 그러자 부시혁이 웃었다. "네가 너무 깊이 자고 있었어. 게다가 자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차마 깨울 수가 없었어." 이 말에 윤슬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화난 척 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화는 이미 사라졌다. 그는 늘 그녀를 달랠 방법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