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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민세희는 아버지 민제훈의 마지막 순간까지 곁을 지켰다. 장례식은 치르지 않았고 모두 태운 뒤 남은 유골은 작은 나무 상자 하나에 담았다. 그녀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장신구를 팔아 아버지의 묫자리를 마련했다. 묘 앞에 무릎을 꿇은 그녀는 정중하게 세 번 절했다.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그녀의 마지막 가족이었다. 이제 그녀에겐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녀는 차가운 청산 빌리지로 돌아가지 않고 곧장 기사에게 민성 그룹 빌딩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빌딩을 지키고 있던 경비원들이 그녀를 막아서려 했지만 그녀의 눈빛을 본 순간 그대로 굳어 섰다. 그녀는 곧장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 손에는 묘지 근처에서 산 길이 3cm 남짓한 작은 칼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대표실 문을 힘껏 열었다. 강도윤은 넓은 책상 뒤에 앉아 있었다. 그 자리는 원래 그녀 아버지의 자리였다. 창밖으로는 강성시의 화려한 야경이 펼쳐져 있었고 그는 이미 이 빌딩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쓰러진 후, 그녀와 함께 받은 혼인신고서를 이용해 권력을 빼앗은 것이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강도윤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이 그녀 손에 든 칼을 스쳐 지나갔지만 놀라기는커녕 입꼬리만 비틀어 올랐다. “아가씨, 오셨으면 미리 말씀이라도 해주죠.” 민세희는 그를 노려보며 한 글자씩 힘주어 말했다. “강도윤. 너 때문에 우리 아빠가 죽었어.” “그래요?” 그는 짧게 대답하곤 다시 서류에 시선을 내렸다. “안됐네요.” 그 가벼운 태도에 그녀의 억눌린 분노가 터져 나왔다. 그녀는 칼을 꽉 쥔 채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분노로 온 힘을 모았음에도 강도윤은 단숨에 그녀의 손목을 제압했다. “나를 죽이고 싶어?” 그는 혀를 차며 손목을 비틀었고 칼은 카펫 위로 굴러떨어졌다. “내가 껍질 다 벗기고 먹기 좋게 잘라서 바친 사과만 먹던 아가씨가 칼은 제대로 쥘 수 있겠어?” 민세희는 화가 치밀어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욕이라도 퍼부으려던 순간, 강도윤이 그녀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중심을 잃은 그녀는 그의 무릎 위에 털썩 앉았다. 익숙한 체온과 허리에 감기는 손길은 수많은 밤들을 떠올리게 했다. 벗어나려 했지만 그의 팔이 더 세게 조여 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경쾌한 뺨 때리는 소리가 울렸다. 강도윤의 얼굴이 돌아갔고 그의 뺨에는 붉은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그런데도 그는 낮게 웃었다. 심지어 반대쪽 뺨을 내밀며 말했다. “이쪽도 때리지 그래? 아가씨께서 화만 풀리면 난 상관없는데.” “짐승만도 못한 놈!” 민세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버지를 죽였으면서 태연하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강도윤, 너 정말 역겨워.” 강도윤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웃음기 없는 차갑고 잔혹한 기색이 드러났다. 그는 그녀의 턱을 잡아 억지로 고개를 들게 했다. “그 사람은 내 부모님을 죽였어. 그건 반드시 받아야 할 벌이었지. 그런데 이미 죽었으니 없던 일로 할 수 있어.” ‘없던 일?’ 민세희는 허탈해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쇠 맛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넌 우리 아버지를 죽이고 회사까지 빼앗았어. 그런데 이제 와서 없던 일로 하자고? 네가 이렇게까지 뻔뻔한 놈인 줄 몰랐네.” 강도윤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손가락 끝에 입을 맞췄다. “아가씨, 잘 들어. 민성 그룹도 내 거고 너도 내 거야. 난 예전 네가 좋아하던 그대로야. 변한 건 없어.” 그때 비서의 내선 전화가 울렸다. “강 대표님, 이사진들이 모두 도착하셨습니다. 주주총회는 5분 후에 시작됩니다.” 그제야 그는 그녀를 놓고 경호원들을 불렀다. “예전처럼 살 수 있어. 스포츠카, 요트, 경매... 네가 내 말만 잘 듣는다면 뭐든 해줄 수 있어.” 그리고 경호원을 향해 말했다. “아가씨를 집으로 모셔.” 그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회의실로 향했다. 민세희는 강제로 청산 빌리지로 끌려갔다. 그날 이후 그녀는 강도윤을 다시 보지 못했다. 모든 연락은 차단되었고 활동 범위는 오로지 이 별장으로 제한되었다. 며칠 뒤, 법 집행 기관이 대문에 봉인 딱지를 붙였다. 민성 그룹은 완전히 새로운 주인을 맞게 된 것이다. 별장 밖에는 소문을 듣고 몰려든 기자들과 구경꾼이 가득했고 카메라 렌즈들은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재벌 가문의 몰락과 아름다운 꽃이 진흙탕 속에 짓밟히는 광경을 즐긴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의 웃음거리가 될 생각이 없었다. 민세희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고 공구실로 향했다. 안에 있던 휘발유 통을 들고나오자 모두가 눈을 크게 뜨며 놀란 기색이었지만 그저 지켜만 볼 뿐 감히 막아서지 못했다. 그녀는 대문 위, 아름다운 정원, 화려한 테라스 곳곳에 휘발유를 뿌렸다. “아가씨! 뭐 하는 짓이에요!” 사방에서 비명과 외침이 터졌지만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휘발유 통을 내던진 그녀가 ‘딸깍’ 라이터를 켜자 불꽃이 튀었다. “쾅!” 불길이 단숨에 치솟으며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덮쳤다. 그녀는 뒤돌아 카메라와 구경꾼들을 향해 당당히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화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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