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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사람이 죽기 직전에는 과거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한다. 민세희는 마치 그해 여름으로 돌아간 듯했다. 무뚝뚝하고 수척한 소년 강도윤이 처음 민씨 가문에 들어왔던 날이었다. 그는 온실에 잘못 들어온, 어울리지 않는 잡초처럼 거실 한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그녀가 가까이 오라고 하자 강도윤은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그녀 앞에 섰다. 민세희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의 또렷한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 남고 싶으면 나한테 잘해야 해. 알겠어?” 잠시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이 흐른 뒤, 소년은 순순히 고개를 숙이고 낮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네.” 그 한마디는 이후 10년 동안 이어졌고 지금은 서로의 목을 움켜쥔 채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어 있었다. 그제야 민세희는 오래전부터 자신이 그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그해 여름 그녀의 삶에 뛰어들었고 몇 년 동안 그녀 마음속에 뿌리를 내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뿌리는 더 단단해지고 더 깊어졌다. 민세희가 갑자기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병원의 천장이었다. ‘구조된 건가?’ 침대 옆에는 강도윤이 엎드린 채 잠들어 있었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눈 밑엔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그의 팔에 멈춰 섰다. 엉성하게 감긴 붕대와 화상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거의 동시에 강도윤도 눈을 떴다. 그는 고개를 들어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잠시 멍해진 듯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깼어? 의사 선생님 말로는 연기를 많이 마셔서 안정이 필요하대.” 민세희는 고개를 돌렸다. 그를 바라보는 것조차 싫었다. “그 청산 빌리지, 그렇게 아까우면 내가 다시 똑같이 지어줄게. 왜 큰 소동을 일으켜서는... 하마터면 너까지 다칠 뻔했어.” “아까운 건 아니야.” 민세희의 메마른 목소리가 또렷하게 이어졌다. “너와 같은 공기를 마시고 싶지 않아. 역겨워.” 그녀는 고개를 돌려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강도윤. 네가 내 칼에 죽거나, 내가 죽거나. 둘 중 하나만 골라.” 그 말에 강도윤의 억지 미소가 깨끗하게 벗겨졌다. 그는 몸을 숙여 친밀한 척 그녀의 뺨에 가볍게 스치듯 얼굴을 기울였다. 속눈썹이 내려앉았고 목소리는 낮고 서늘했다. “왜 선택해야 해? 난 네가 나랑 같이 살았으면 하는데. 민세희, 나는 네가 건강하게 오래 살길 바라. 넌 오래오래 살 거야.” 그는 말을 끝내고 몸을 일으켰다. 민세희가 던진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졌지만 그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문이 조용히 닫히고 남은 침묵 속에서 그녀는 그의 말에 화가 치밀어 폐가 아플 정도였다. ‘오래오래 같이 살자고? 내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지금 자신이 그를 죽도록 싫어한다는 걸 강도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문이 다시 열렸다. 의사가 보고서를 들고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민세희 씨, 응급 처치 중에 몇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조용히 덧붙였다. “희귀 혈액 질환인데... 진행 속도가 아주 빠릅니다. 아마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을 겁니다. 바로 치료를 시작할까요?” 민세희는 멍해졌다. ‘한 달?’ 처음에는 어리둥절했고 곧 엄청난 허무함이 밀려왔다. 심지어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그녀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보고서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필요 없어요. 강도윤에게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그라면 그녀를 오래 살게 하려고 불길 속에 뛰어들어서라도 붙잡아둘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남은 건 고작 한 달뿐이었다. 그녀는 오히려 한 달 뒤, 강도윤의 표정을 보지 못하게 된 사실이 이상할 만큼 아쉬웠다. 강도윤은 그녀를 강성시의 최고급 펜트하우스로 옮겼다. 인테리어는 호화롭고 시야는 탁 트여 있었으며 모든 디테일은 그녀의 옛 취향에 맞춰져 있었다. 옷장에는 그녀가 좋아하던 브랜드의 최신 의상들이 가득했고 바닥에는 부드러운 카펫이 깔려 있었다. 가구 모서리에는 충돌 방지대가 붙어 있었고 칼은 물론 날카로운 장식품 하나조차 없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조차 도우미가 대신해 주어야 했다. 그는 그녀를 강성시 하늘 위, 부드러운 금빛 새장 속에 가두었다. 민세희는 넓은 테라스 난간에 기대어 밤바람을 맞았다. 다 타버린 담뱃재를 옆에 놓인 강도윤의 고가 화분에 털어 넣으며 냉소를 띠었다. 아파트 외부에 건물과 거의 하나로 붙어 있는 투명 방호망까지 추가된 것을 보고 입꼬리가 다시 올라갔다. 정말 빈틈이 없었다. 그녀가 죽을 공간조차 없도록 치밀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민세희는 담배 연기를 길게 뿜었다. 흩어지며 사라지는 연기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곧 해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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