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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눈앞에서 차현우의 배신을 확인한 순간, 임지유의 가슴은 통째로 도려낸 듯 아려왔다. 임지유는 차세준을 안아 방으로 들어가 작은 침대에 눕히고 애써서 달랬다. “세준아, 길어도 사흘이야. 사흘 뒤에는 우리 떠나자. 그동안 방에 있는 자잘한 것들 정리해 줄래?”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임지유는 문을 조용히 닫았다. 복도에서 차현우가 낮고 차갑게 말했다. “서재로 와.” 서재에 들어서자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소파와 러그 위에는 머리핀, 작은 액세서리, 악보, 군것질 봉지까지, 지아의 흔적이 널려 있었다. 몇 해 동안 이곳은 두 사람이 데이터를 맞추고 연구 방향을 토론하던 자리였는데 어느새 모든 게 바뀌어 있었다. 그때가 떠올랐다. 차세준을 임신하고 지쳐 그의 어깨에 기대 깜박 잠들었던 날. 깨어나자 차현우가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지유야, 무리하지 마. 너랑 아이가 내 남은 인생이야. 너희가 괜찮아야 나도 괜찮아.” 그 말을 믿고 버텼다. 집도 온기도 그가 준다고 믿었으니까. 탁! 두툼한 서류 뭉치가 임지유의 가슴팍에 떨어졌다. 자필로 빽빽이 적힌 반성문들이었다. “북성에서 연락이 왔어. 지아 괴롭힌 애들 자백. 누가 그 계좌로 돈을 보냈대. 추적해 보니 끝이 너더라.” 임지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차현우의 목소리는 더 차가워졌다. “난 이혼 안 해. 이번 일은 내가 지아 달랠 거고 다시는 내 곁을 떠나게 두지 않아. 이 결혼을 지키고 싶으면 그 못된 생각 집어넣어.” 임지유는 설명할 기운조차 없었지만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내일 시간 돼? 연구실 좀 같이 가자. 지난 데이터 한 묶음에 오류가 있어서 안에 들어가 확인해야 해.” 회사 얘기가 나오자 그의 미간이 한층 더 깊게 찌푸려졌다. 차현우가 짧게 대답했다. “내일 아침에는 지아 병원부터 가. 흉터 남으면 안 돼. 점심까지 같이 먹이고 오후에 회사로 갈게.” 그제야 임지유는 알았다. 자신이 언제부터인가 그의 일정에서 늘 ‘맨 마지막’으로 밀려나 있었다는 걸. 지아의 첼로 대회가 있는 날에는 해외 파트너와의 회의를 그녀 혼자 떠맡긴 채 차현우는 공연장으로 달려갔다. 지아가 아프다고 한마디 하면 야근을 마친 그녀를 길가에 내려 혼자 택시를 타고 본가로 가게 했다. 지아가 만둣국 먹고 싶다고 하면 열몇 시간을 서서 일한 밤에도 그녀를 부엌으로 불러내 국물을 끓이게 했다. “알았어...” 임지유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다음 날 새벽. 날을 가르는 비명에 임지유가 벌떡 눈을 떴다. 문이 쾅 열리며 차현우가 미친 듯 들이닥치더니 침대에서 그녀를 거칠게 끌어 내렸다. 임지유의 손목이 뼈까지 저리도록 짓눌렸고 차현우는 핏발 선 눈빛으로 으르렁댔다. “임지유, 네가 감히 지아한테 이런 짓을 해?” 옆에서 차세준이 울먹이며 아버지를 두들겼다. “엄마 놓으세요! 아빠는 나쁜 사람이에요!” 차현우가 세게 밀치는 바람에 아이가 쿵 하고 바닥에 넘어졌다. 그는 휴대전화를 침대 위에 힘껏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누가 지아 노출 사진을 유포했대. 벌써 북성 전체에 퍼졌다고...” 그때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대표님! 지아 양이... 자해를 했습니다!” 차현우는 임지유를 밀쳐내고 맞은편 방으로 내달렸다. 임지유가 문턱에 서자 하얀 이불 위에 쓰러진 지아의 손목에서 새빨간 피가 또르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임지유의 얼굴이 순식간에 질렸다. 그녀는 손을 뻗어 차세준의 눈을 가렸다. “세준아, 엄마 말 들어. 방에서 절대 나오지 마.” 이번 판에서 지아는 기어코 ‘목숨’을 카드로 꺼내 들었다. 그 대가가 어디까지 번질지, 임지유는 가늠할 수 없었다. 차현우는 지아를 번쩍 안아 들고 병원으로 뛰었다. 임지유는 그의 경호원들에게 끌리다시피 다른 차에 태워졌다. 차는 미친 듯 속도를 올렸고 곧 차씨 가문 산하 병원에 도착했다. 차현우는 지아를 품에 안은 채 허둥대며 응급실로 달려 들어갔다. 문득 떠올랐다. 차현우는 원래 이름난 외과의사였다. 그런데도 지금은 허둥대는 나머지, 그 사실조차 잊은 얼굴이었다. 그가 지아 방에 들어간 지 채 1분도 되지 않아 지아는 손목을 그었고 때마침 장 아주머니가 그 장면을 우연히 보았다. 피가 흐르긴 했지만 상처는 깊지 않았고 당장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는 아니었다. 곧 임지유는 경호원들에게 붙들려 수술실 앞까지 끌려왔다. 차현우가 얼어붙은 눈으로 그녀를 훑어보더니 낮게 내뱉었다. “찍히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그럼 마음껏 찍게 해 주지.” 그는 한걸음에 다가와 경호원과 병원 직원이 보는 앞에서 임지유의 옷깃을 거칠게 잡아챘다. 천이 찢겨 나가는 소리와 함께 원피스가 순식간에 갈라졌다. 차가운 공기가 맨살을 훑고 지나가자 임지유가 본능적으로 옷자락을 끌어 올렸다. 그러나 차현우가 몸을 들이밀어 손목을 비틀어 머리 위에 못 박듯 고정했고 몸부림칠 겨를조차 없었다. 이어 싸늘한 차현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임지유, 네가 지아한테 한 짓. 내가 백 배로 돌려줄게.” 목이 바짝 마른 임지유가 겨우 소리를 짜냈다. “차현우, 난 네 아내야. 우리 아이 엄마라고. 사람들 앞에서...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대답 대신 그는 더 세게 벽으로 몰아붙였다. 주위에는 벌써 휴대전화 불빛이 수십 개 켜졌다. 라이브 방송, 촬영, 녹화... 플래시가 눈앞에서 하얗게 터졌다. 이때 차현우의 입가가 잔인하게 비틀렸다. “네가 지아의 명예를 짓밟았지. 난 널 북성 전체가 지켜보게 만들 거야.” 몸을 잔뜩 웅크렸지만, 쏟아지는 시선과 수치심은 막을 수 없었다. 차현우는 손목을 더 꽉 치켜잡은 채 일부러 몸을 비켜서 사람들이 더 잘 보게 만들었다. 차현우라는 이름이 주는 권력과 호기심이 군중의 렌즈를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 순간, 뜨거운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그 순간 임지유의 머릿속을 스친 건 5년 전의 차현우였다. 그때는 치맛자락이 살짝 찢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차현우가 망설임도 없이 외투를 벗어 그녀를 온몸으로 감싸 주었다. 드러난 것도 없었는데 그저 놀랐다는 이유 하나로 호들갑을 떨던 사람. 그런데 지금, 눈앞의 남자는 다른 여자를 위해 임지유의 삶을 통째로 짓밟고 있었다. 그가 손목을 놓는 순간, 임지유는 힘이 빠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떨리는 손으로 옷을 움켜쥐어 급히 여몄고 한시라도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몸을 돌렸다. 이때 등 뒤로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꽂혔다. “임지유, 지금 네 사진은 전부 인터넷에 올라갔어. 지아 사진은 내가 싹 내렸고. 네 사진은... 혼자 알아서 해.” 가슴께를 움켜쥔 채 비틀린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더는 할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없었다. 임지유는 그 자리를 조용히 떠났다. 계단을 내려오며 문득 떠오른 건, 그가 처음으로 자신을 품었던 밤이었다. 가슴에 찍힌 작은 붉은 점에 입을 맞추며 차현우는 낮게 속삭였다. “지유야, 네 몸은 오직 나만 봐. 누구도 건드리게 두지 않을 거야.” 차 안에 올라 휴대전화를 켜자 포털과 커뮤니티가 같은 문장들로 들끓고 있었다. [차현우 대표 아내 노출 사진 유포...] [‘가슴 위 붉은 점’ 논란] [뜨거운 몸매!] [속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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