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화
하지안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그 순간, 벽 앞에 서 있던 한 남자가 바지 지퍼를 내린 채 서 있었다.
하지안은 얼떨결에 멈칫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금방이라도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마침 그때 최우성이 고개를 들어 올렸고 두 사람의 시선이 정면으로 맞부딪쳤다.
최우성 역시 멍하니 하지안을 바라보다가 설명할 수 없는 수치심이 온몸을 휘감았다.
‘젠장! 나도 어엿한 재벌가의 도련님인데 이런 인적 드문 공사 현장에 떠밀려 온 것도 모자라 참지 못하고 볼일을 보다가 여자의 눈에 그대로 들켜 버리다니!’
하지안은 얼굴이 화끈거리고 민망해서 이빨을 꽉 물며 쏘아붙였다.
“쓰레기 같은 변태 자식... 정말 예의라고는 하나도 없네요.”
“뭐? 지금 나보고 변태라고? 남자 볼일 보는 걸 훔쳐보는 너는 대체 무슨 취향이냐? 네가 오히려 변태지!”
최우성의 뺨에는 붉은 기가 스쳤고 지퍼를 올리려 애쓰면서도 창피함을 감추지 못한 채 발끈했다.
하지만 급하면 급할수록 실수하기 마련이라 지퍼는 중간에 걸려 도무지 올라가지 않았다.
“너...”
하지안은 더 이상 못 보겠다는 듯 얼굴을 홱 돌렸고 이토록 뻔뻔하고 몰상식한 남자는 처음이었다.
최우성은 이를 갈며 악에 받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일은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네 혀를 잘라 버릴 거야!”
그렇게 쏘아붙이고는 황급히 발걸음을 재촉해 자리를 피했고 하지안은 입술을 깨물며 속으로 울분을 삼켰다.
‘정말 재수 없어... 집에서 나오기 전에 기도라고 하고 나왔을 걸 그랬어...’
사무실로 돌아온 최우성은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졌다.
‘사람 망신도 진짜 이런 망신이 없어!’
최우성은 의자를 발로 차서 엎었고 그의 얼굴은 시커멓게 질렸다.
그때 서현수가 잔뜩 굽실거리며 들어왔다.
“도련님, 원하신 커피 사 왔습니다. 네 잔이에요. 아직 뜨거울 때 드세요.”
여전히 화가 치밀어 있던 최우성은 서현수의 말에 소리쳤다.
“또 커피야? 너는 맨날 커피 타령이냐? 내가 망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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