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0화

여민지는 진수빈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문가영이 지나치게 몰아붙인다는 생각 안 들어요? 우리 부모님 상황 잘 알잖아요. 원래도 건강이 안 좋은데 가스 중독까지 걸렸어요.” 여민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여수진이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문가영이 권동해를 찾으러 병실에 와서 고달픔을 못 이긴 그가 퇴원하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그래서 여수진은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말했다. 여민지는 눈에 띄게 목소리가 떨리고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늘 거만하던 그녀의 얼굴에 애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 문가영이 뭘 원하든 다 할게요.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감당하지 못해요.” 여민지는 진수빈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했지만 진수빈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난 이미 약속했어.” 문가영의 대처방식에 동의하는 건 아니었지만 약속했다. 그렇게 말한 뒤 그는 여민지를 지나쳐 자리를 떠났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여민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후로 신경외과에서 진수빈과 여민지 사이가 틀어졌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되었고 함영희가 이 일을 문가영에게 전하며 감탄했다. “여민지 표정을 못 봐서 아쉽네. 진 선생님을 원수처럼 본다니까? 전에 여민지와 그렇게 사이가 좋았는데 진 선생님은 어떤 심정인지 모르겠네. 여민지 때문에 매번 가영 씨는 뒷전이었잖아.” 문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진수빈이 그녀가 권동해 부부를 계속 괴롭히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함영희는 고소하다는 듯 말하고는 권동해 일가에 대해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 권동해가 중년 부부에게 사주했다는 사실을 문가영은 누구에게도 숨기지 않았다. 권동해가 감히 그런 짓을 했다면 기어코 인정하게 만들어야 한다. 화풀이를 끝낸 함영희가 문가영에게 물었다. “가영 씨, 언제 다시 병원에 복귀할 거야? 너무 보고 싶어.” 문가영은 잠시 침묵을 지키며 입술을 다물었다. “안 돌아갈지도 몰라.” 전에 문지성이 그녀를 찾아왔을 때 따로 건넨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