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1화

진수빈은 지금 어떤 심정인지 도무지 표현할 수 없었다. 그는 천운을 타고 태어난 사람이라 지금껏 어려움이 없었다. 방우지는 그에게 계속 그렇게 냉정했다가는 결국엔 자기가 다칠 수도 있다고 수도 없이 말했다. 진수빈은 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적 없었다. 진수빈의 지난 20여 년 인생을 보면 소민정을 제외하고 거의 무적이었다. 그러다 문가영을 만나게 된 것이다. 본질적으로 말하면 문가영은 강렬한 이미지가 아닌, 진수빈이 필요할 때 조용히 나타나는 잔잔한 물과도 같았다. 그가 질려하면 조용히 물러나기도 했다. 진수빈은 한때 이것을 아무렇지도 않은 습관으로 여겼다. 문가영을 아무나하고 대체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자기 자신이 깔끔한 성격임을 잊고 있었다. 골목길에서 문가영을 끌고 나온 그 순간부터 문가영은 대체 불가였다. 하지만 그 대체 불가능한 문가영을 그는 점점 더 멀리 밀어내고 있었다. 진수빈은 자기가 모든 것을 통제할 정도로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문가영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아픈 척 문가영을 억지로 곁에 두려고 했다. 그는 문가영이 여전히 예전의 문가영일 줄 알았다. 한 박자 느려도 온 신경이 그에게 있을 줄 알았다. 모두가 문가영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모를 거로 생각했을 때 진수빈도 그런 줄 알았다가 지금에서야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는가? 그는 사실 모든 걸 알고 있었다. 문가영이 기대에 차서 조심스럽게 바라보던 모습, 언제나 아낌없이 자기편을 들어주던 모습. 이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자기를 좋아하는 것을 모를 수가 있겠는가. 진수빈은 일부러 외면했을 뿐이다. 지난 일이 머릿속에 하나하나 떠오를수록 진수빈은 가슴이 점점 답답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정말 나쁜 놈이었다. 진수빈은 이때 휘청거릴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가느다란 빗줄기가 그의 어깨에 떨어져 뼛속까지 차가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눈을 감고 말했다. “지금 사과해봤자 이미 늦은 건가?” 문가영의 옷은 이미 비에 젖어 있었다. 진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