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화

마치 주위에서 부는 바람조차 멈춘 듯했다. 문가영은 순간적으로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너무 티 내지 않으려 애썼다. 시선을 내린 채 그녀를 바라보는 진수빈은 문가영의 답변을 기다리는 듯했다. 솔직히 말해서 진수빈은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구혜림과 임슬기가 파혼에 대해 말할 때 진수빈은 문제가 해결되는 듯한 안도감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초조해졌다. 자신의 이런 감정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긴장한 마음을 억누른 문가영은 최대한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며 진수빈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 만약 진수빈이 파혼하고 싶다고 말하면... 깊게 숨을 들이마신 문가영은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더니 입가에 쓰라린 미소가 번졌다. 진수빈이 파혼을 원한다면 문가영은 받아들일 생각이었지만 진수빈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네 의사를 존중할게.” 문가영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잖아요, 나에게는 결정권이 없다는 걸.” 사실 이것은 어느 정도 거짓말이 포함되어 있었다. 다른 일들은 그녀가 결정할 수 없을지 몰라도 지금 문소운에게 진수빈과 파혼하고 싶다고 말한다면 문소운은 즉시 동의할 것이다. 문가영의 말에 진수빈은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한 채 더 이상 이 질문을 이어가지 않았고 문가영이 가져온 맥주 캔을 바라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맥주를 왜 가져 온 거야?” 진수빈이 말머리를 돌리자 문가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진수빈에게 물었다. “예전에 우리 여기서 같이 맥주 마신 거 기억나요? 그때가 그리워서요.” 문사라와 진수빈은 그녀보다 세 살 위였다. 그해 문가영은 열네 살, 문사라는 열일곱이었다. 같은 학년인 남학생을 좋아하는 문사라는 수능이 끝나자 고백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날 문사라는 눈이 빨개질 때까지 울며 문가영을 이곳으로 끌고 와 맥주를 마셨다. 나중에 두 사람을 찾아온 진수빈은 결국 함께 마시게 되었다. 그날 밤 그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았지만 사실은 대부분이 문사라가 그 남학생이 얼마나 완벽한지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얼굴에 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