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6화

아까 그 황당한 말은 아마 꿈이라고 착각해서 내뱉은 넋두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박여진은 알 수 있었다. 박태호를 끝까지 몰아붙이면 그는 정말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녀는 크게 숨을 고르고 다시 손을 내밀었다. “이틀 내내 술만 마셨잖아. 집까지 데려다줄게.” 잠시 침묵하던 박태호가 천천히 손을 들어 박여진의 손을 잡았다. 박태호를 일으켜 세우는 건 어렵지 않았고 그는 곧장 그녀의 어깨에 몸을 기대 침을 꿀꺽 삼켰다. “오늘 무슨 향수 뿌렸어? 냄새 너무 좋다.” 박여진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그는 또다시 본능에 휘둘리고 있다. ‘그래. 이 나이면 머릿속에 온통 이런 생각으로 가득할 시기지.’ 게다가 박태호와의 관계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그는 늘 갈증이 난 듯 간절하게 박여진을 원했다. 그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박태호를 이끌고 밖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끝없이 박여진에게 몸을 비비더니 마치 옷까지 벗겨내려는 듯 달라붙었다. 박태호를 간신히 차에 태운 그녀는 단단히 안전벨트를 매주며 말했다. “조용히 해. 집에 데려다줄 거니까.” 네온사인이 흩어지는 길을 달린 지 40분쯤, 차는 그의 집 앞에 멈췄다. 박태호는 문을 열고 자신을 부축하던 박여진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오늘 밤은 가지 마. 제발... 너무 보고 싶었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으름장을 놓더니 이제는 애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여진은 단호하게 그를 밀어내고 돌아섰다. 이 집에 들어가는 순간, 자신은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박씨 가문 쪽에서 이미 박여진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특히 김해영이라면 오늘 밤 당장이라도 이곳을 찾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박태호는 그녀의 허리를 거칠게 붙잡고 거의 울부짖듯 말했다. “여진아, 넌 정말 이렇게 잔인해? 왜 안 돼? 왜 나랑은 안 되는 거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넌 날 이렇게 괴롭혀?” 박여진의 허리를 끌어안고 그의 있던 팔에 힘이 점점 더 세졌다. ‘왜... 왜 하필 너야. 왜 네가 나를 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