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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권서아의 붉어진 눈시울과 마주하는 순간, 김도균의 심장이 왠지 모르게 덜컥 내려앉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입가에 매력적인 곡선을 그리며 나른하고도 치명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기야, 자기랑 결혼 안 하면, 나더러 평생 홀아비로 살라는 거야?” 그는 권서아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손을 풀어 그녀의 차가운 손을 맞잡더니 자신의 심장 위에 가져다 댔다. “미안해, 자기야. 네 입에서 이런 질문이 나오게 한 건 내 불찰이야. 내가 너한테 충분한 확신을 주지 못했나 보네.” 김도균은 그녀의 손을 이끌어 가슴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게 하더니, 마침내 정장 바지의 지퍼 근처에 멈춰 섰다. “자기야, 만져봐. 얘는 너한테만 반응하잖아.” 남자의 아래가 단단하게 솟아오른 걸 느낀 권서아는 마치 감전된 것처럼 황급히 손을 거두었다. 권서아는 당황한 채 반걸음 뒤로 물러났고 허리가 세면대에 닿았다. “알겠어요. 여기 너무 답답해요. 그만 나가요.” 김도균은 낮게 웃음을 터뜨리며 자연스럽게 그녀와 깍지를 끼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하지만 김도균은 그녀를 데리고 다시 방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마이바흐 뒷좌석에서 그녀를 제 아래에 가둬 눌렀다. “자기야, 네가 불을 지폈으니까, 책임지고 꺼줘야지...” 김도균의 뜨거운 숨결이 귓가에 닿자 권서아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목덜미에는 뜨거운 입술이 내려앉았고 가슴팍의 단추가 하나둘 풀려나갔다. 권서아의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지러웠다. 막 남자를 밀쳐내려던 찰나, 갑자기 차 안에서 다급한 전화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도균은 전화를 받을 생각이 없었지만 권서아가 옆에 떨어진 휴대폰을 집어 그에게 내밀었다. “전화받아요. 급한 일일지도 모르잖아요.” 김도균은 입을 열어 거절하려다가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고 순식간에 태도를 바꿨다. “그래, 네 말 들을게, 자기야.” 말을 마친 그는 권서아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차 밖으로 나갔다. 차창 유리에 비친 김도균은 전화받으며 입가에 다정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잠시 후, 그가 다시 차 문을 열고 권서아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미안함이 서려 있었다. “자기야,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겼어. 기사 불러줄 테니까, 먼저 집에 가 있을래?” 권서아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좀 걷다가 알아서 택시 타고 갈게요.” 김도균은 권서아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그래, 자기야. 일찍 들어가고, 도착하면 문자 해.” 권서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차에서 내렸다. 제자리에 서서 멀어져 가는 김도균의 차를 지켜보던 그녀는 손을 들어 택시를 잡았다. “저기 앞에 있는 마이바흐 따라가 주세요.” 김도균을 저토록 다정하게 웃게 만들고 그를 이토록 서둘러 떠나게 만들 수 있는 사람, 그의 약혼녀 말고는 떠오르는 이가 없었다. 택시 기사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가속 페달을 밟아 뒤를 쫓았다. 마이바흐는 어느 고급 아파트 단지 앞에 멈춰 섰다. 익숙한 아파트의 모습에 권서아는 의아함이 들었다. 그녀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김도균은 이미 차에서 내렸다. 그는 차 문에 기대어 서 있었고, 눈빛에는 감출 수 없는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잠시 후, 사랑스럽고 단아한 분위기의 여자가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꼭 끌어안았고 김도균은 여자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 눈에 담긴 절제된 다정함은 권서아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두 사람의 친밀한 모습을 지켜보는 권서아의 마음은 마치 칼에 조각조각 베여 피가 철철 흐르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 여자의 얼굴을 확인한 권서아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굳어버렸다. 김도균의 약혼녀는 다름 아닌, 권서아가 수년 동안 후원해 온 배수진이었다. 15년 전, 권서아는 여행 중에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찾던 어린 소녀를 만났다. 여덟 살 아이치고는 고양이처럼 마른 모습에 마음이 쓰였던 권서아는 같은 배씨라는 점에 이끌려 10년 넘게 후원했으며 여행이 끝난 후 실제로 만난 적은 없었지만 온라인으로 꾸준히 소통해 왔다. 소녀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많은 돈을 요구했지만 권서아는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인천으로 대학을 오게 되자 자신의 명의로 된 아파트까지 빌려주어 머물게 했다. 권서아는 그녀의 삶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 좀처럼 먼저 연락하지 않았지만 배수진은 늘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며 살갑게 굴었다. ‘배수진이 김도균의 약혼녀였을 줄이야...’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마이바흐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권서아는 황급히 택시 기사에게 뒤를 쫓으라고 했다. 마이바흐가 도착한 곳은 어느 한 오래된 저택이었다. 먼저 차에서 내린 김도균은 신사답게 배수진을 위해 차 문을 열어주었다. 대문 앞에는 김도균의 부모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내리는 것을 보자 그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아저씨, 아주머니. 오늘도 폐를 끼치게 됐네요.” “얘도 참, 아직도 아저씨, 아주머니라니. 이제 아버지, 어머니라고 불러야지.” 멀지 않은 곳에 조용히 서서 그들의 화기애애한 모습을 지켜보던 권서아의 얼굴이 차갑게 식어갔다. 그녀는 3년 동안 연애하면서 김도균의 부모님을 단 한 번도 뵌 적이 없었다. 만남을 제안할 때마다 김도균은 늘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적당한 때가 올 거라고 말하곤 했다. 알고 보니 그가 기다린 것은 적당한 때가 아니라 적당한 사람이었다. 가슴 한구석에서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번져 나왔다. 권서아는 당장 달려가 따지고 싶었지만 자신에게 그럴 자격조차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고통을 삼키며 멀지 않은 곳에서 묵묵히 기다렸다. 밤이 깊어 갈 무렵, 그녀는 마침내 두 사람의 모습을 다시 한번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배수진은 김도균의 품에 기대어 있었고 김도균은 애정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차 안으로 돌아갔고 김도균은 다이아몬드 목걸이 하나를 꺼내 배수진의 목에 직접 걸어 주었다. 권서아는 첫눈에 알아보았다. 그것은 최상급 다이아몬드로 제작된 목걸이였다. 그리고 그녀의 손목에는 똑같은 디자인의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다만 그것은 작은 다이아몬드로 만든 것이었다. 바로 그 목걸이를 사고 받은 사은품이었다. 권서아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울고 싶기도 하고 웃음이 나올 것도 같았다. 온몸이 찢겨나가는 것처럼 아팠지만, 이상하게도 그 상처 틈새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어온 권서아의 연애가 마침내 오늘 밤, 완전히 끝이 났다. 그녀는 뒤돌아 도망치려 했으나 다리에 납덩이라도 매단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때, 운전석에 앉아 있던 김도균은 앞 유리를 통해 익숙한 한 사람의 실루엣을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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